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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절박한 호소이다. 나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그저 평범하게 알을 낳고 돌보며 사는 암컷 도롱뇽이다. 봄이 되면 풍매화와 함께 봄을 알리는 생물로 사람들은 나를 꼽곤 한다. 나는 날이 따뜻해졌다 싶으면 동면에서 깨어 산란을 시작한다. 나는 본디 4월 초에서 5월 말에 걸쳐 산란을 하고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의 작은 돌멩이 및 수초에 알을 붙인다. 보통 한 마리의 암컷이 100개 정도를 낳는다. 알은 3~4주 안에 부화되며 부화 직후 유생의 길이는 10~15㎜ 정도이다. 성체는 수서곤충을 먹고산다. 늘 경칩을 즈음해 신성한 알 낳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새부터인가 그 날짜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올해보다 10일이 빨랐고 올해도 2월 날이 춥지 않아 일어나서 산란을 시작했다. 알을 낳고 보면 갑자기 추운 날이 올 때도 있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같이 사는 개구리 녀석들 중 몇몇은 나처럼 날씨를 착각하고는 활동을 시작하다 다시 찾아온 추운 날씨에 죽어버린 것도 보았다. 비통하다. 우리는 아무 죄가 없는데, 다만 순리대로 따뜻한 날 일어나서 산란을 한 것밖에 없는데…. 이런 이상한 기후를 인간들도 말 그대로 이상기후라고 부르더라.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기후가 예측할 수 없이 변하고 있다. 나의 삶 또한 매년 예측할 수 없이 변하고 있다.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춥지 않고, 그리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비가 오지를 않아 전체 강우량은 줄어들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물과 뭍, 두 곳에 산다고 하여 인간들은 나를 양서류라고 부른다. 4억년보다 더 전부터 지구에서 살았고 육상생활에 최초로 적응한 척추동물이다. 지구상에 넓게 분포하여 주로 습한 곳에 서식하지만 건조지방에서도 적은 물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고 환경의 변화로 물에 살기가 어려워졌을 때는 다리를 진화해 적응하는 그야말로 생존의 아이콘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멸종 위험성이 가장 큰 종으로, 오염이나 기후변화 등에 민감해 환경 지표종 구실을 하고 있다. 기온의 상승, 극심한 가뭄과 길어지는 건기 등의 기후변화와 난개발로 인한 서식지의 훼손, 환경오염 등은 피부로 호흡하는 양서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70년 이후 나와 친구들은 급격히 멸종하면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양서류를 가장 취약한 생물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의 멸종은 연쇄적으로 다른 생물의 멸종을 가져온다. 특히 생태계 먹이사슬의 중간단계에 있는 양서류의 멸종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파괴를 의미한다. 나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사는 생물이 아니게 됐다.

내가 사는 백사실계곡은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문화사적(백석동천, 사적 제462호, 명승 제36호)과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서울시가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나뿐 아니라 버들치, 가재, 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1급수 지표종인 나는 서울시 자연환경보전조례에 의한 서울시 보호 야생동물로도 지정되어있다. 그런데 2010년 텔레비전에 방영되면서 아는 사람만 안다는 서울의 청정계곡인 이곳이 모두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탐방객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들의 무분별한 장소사용으로 나의 삶터는 보전지역보다 관광거리가 되었고, 인근 터널 공사 등으로 서식처가 파괴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상기후까지. 인간들은 정말 가지가지 한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제 나도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인간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생존권을 외치는 것처럼 나도 뭔가를 해야 한다. 나 스스로 아무리 이상한 환경에 적응을 하려고 노력해도 기본적인 환경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생존할 수 없다. 슬프지만 죽음만이 나의 위기와 이곳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최후의 수단일 뿐 나아지기 위한 과정은 아니다. 나의 생존은 부단한 나의 적응과 더불어 상위포식자인 인간이 이 위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에 따른 환경 개선을 위한 실천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도롱뇽이 살 수 없는 곳은 인간도 살 수 없다. 내년 봄에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내가 살 수 있게 지구온난화 등 환경 파괴를 멈춰야 한다. 나도 살고 싶다. 내 친구 버들치, 개구리, 가재와 함께 원래 우리가 주인인 곳에서 살고 싶다. 제발 나를 지켜달라.

조민정 |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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