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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고 싶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3년째 체험활동을 경험하지 못한 현진이의 하소연이다. 현진이는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입학식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리고 친구들 얼굴도 모른 채 집에서 온라인 수업 수강에 돌입했다. 3개월의 시간이 흐르자 꿈에 그리던 학교를 만나는가 싶었지만, 학교는 창살 없는 감옥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교육부 방역지침에 따라 학교는 현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옥죄었다.

코로나19를 난생처음 접하게 된 교사도 현진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상호 교감하던 수업 방식은 한순간에 박물관으로 사라졌다. 시커멓고 커다란 눈을 부릅뜬 카메라를 응시하며 혼자 진도를 나가는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다. 왁자지껄 웃음 짓는 생동감 넘치는 따뜻한 교실이 딱딱한 벽에 차가운 기계음이 울리는 스튜디오로 변하는 순간이다. 살아있는 거라고는 20인치 화면 속에 빽빽하게 얼굴을 내밀고 출석 체크를 시도하는 학생들과 교사 한 명뿐이다.

온라인 수업을 처음 접하는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직장 스트레스와 육아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학부모에게 또 다른 과제를 안겨줬다. 허울 좋은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을 줄여줄 뿐, 직장 업무의 강도는 똑같은 상황이다. 하물며 학교에 있어야 할 자녀의 삼시세끼와 온라인 수업을 추가로 챙겨야 한다. 이마저도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는 조부모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2022년 5월2일, 드디어 학교가 살아났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5월 어느 날, 학생들은 저마다 이를 악물며 힘차게 줄다리기하는 줄을 당긴다. 뙤약볕이 무슨 대수냐? 고3 현진이가 입학해서 처음 맞는 체육놀이 한마당이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가 어느샌가 조르르 흘러내린다. 우리 편이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친구들과 함께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딱딱한 스튜디오에서 차가운 기계를 친구 삼아 지내는 게 어색했던 교사는 테마학습(수학여행)을 준비하는 게 즐겁다. 학생들이 원하는 장소를 찾고, 학생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꾸미며, 학생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파악해서 계획서를 작성하는 이 기분이 좋다. 이제야 진짜 교사가 된 기분이다. 교사가 학생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지난날에는 미처 몰랐다. 그저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행복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현진이 부모는 매일 반복되는 같은 일상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기숙사 학교에 재학 중인 현진이의 삼시세끼는 학교가 책임진다. 그리고 일과 중에는 정규수업을 받고 일과 후에는 방과후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학교에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줄 미처 몰랐다.

 

드디어 학교가 살아났다. 학교가 학교인 이유를 이번 사태를 통해 충분히 보고 느꼈다. 일상의 행복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이번 일을 겪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정현 김제농생명마이스터고 교사·<교사내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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