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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사업장의 갈등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500명 집단해고 사태가 그렇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고착된 지 20년이 지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커졌고, 정규직은 또 하나의 기득권이란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은 직접고용 형태로 일하다 외환위기 이후 외주용역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도로공사는 퇴직자들을 외주용역 수납원들을 관리하는 영업소 사장으로 들여보내 정규직의 노후 보장 저수지를 만들었다. 비정규직이 된 요금수납원은 해마다 계약 해지 등으로 수백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도로공사는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진됐다. 도로공사는 추진과정의 전략단위로 선정됐다. 요금수납원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는 도로공사 직원’이라는 판결을 구하는 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 1·2심 모두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정부는 도로공사 수장으로 이강래 전 의원을 임명했고, 정규직 전환 추진은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본격적인 귀성 행렬이 시작된 11일 오후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기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10m 높이 옥상구조물(캐노피) 위에 함께 모여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7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러나 이강래 사장과 정규직의 기득권 유지 욕심이 카르텔을 형성하며 일이 틀어졌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법원 판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회사 설립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강래 사장은 자회사 전환으로 정규직화 실적을 포장했다. 정규직노조는 6500명의 요금수납원이 직접고용되면 자신들의 임금과 교섭대표성 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때부터 매우 집요한 자회사 회유, 협박이 진행됐다. 요금수납원들에게 법적 소송 포기 각서까지 받았다. 

노사 합의에 의해서 자회사 전환이 진행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노동자 대표들 대부분이 급히 선정된 무노조 대표로 현장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정부에서 파견한 전문가 위원들은 자회사에 반대해 회의장을 이탈했다. 그러나 결국 1500명이 자회사를 거부하고 해고됐다. 대법원은 요금수납원이 도로공사 직원이고 이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1500명 전체를 직접고용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강래 사장은 소송이 진행 중인 나머지 요금수납원들에 대해 법적 절차를 또다시 밟겠다는 입장이다. 천문학적인 법적 소송비용과 손해배상 비용을 낳을 것이다. 모두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1500명의 요금수납 업무 공백을 메우는 비용 역시 세금이다.

현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해결방안을 교섭으로 풀자며 본사를 찾아가 이강래 사장을 기다리고 있다. 정규직노조는 목검과 죽도를 들고오기도 하고, 경찰과 합세해 요금수납원들을 진압해, 요금수납원들이 상의 탈의 저항까지 하게 만들었다. 1970년대 발생하여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들끓게 했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탈의시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이는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공공기관인 도로공사는 대법 판결을 피해가기 위한 탈법 의도로 자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정규직노조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합세했다. 마지막으로 사법 판단을 가장 올바르게 수행해야 할 청와대와 정부는 사태 해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 최종 판결에서 이겨도 싸워야 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이강래 사장이 수장인 한국도로공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양진 |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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