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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윤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중종 때 실시한 현량과를 통해 조정에 나아갔다.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파들이 과거제도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현량과를 시행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추천한 글에 의하면, 김명윤은 학행도 뛰어나고 지조도 굳세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조정에서는 명예로운 홍문관 벼슬을 그에게 주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 밤, 김명윤은 숙직을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변고가 일어날 조짐을 미리 알았다. 누군가 말해주었던 모양이다. 그는 친구를 졸라서 숙직을 바꾸었다. 그해 겨울, 조광조를 비롯한 김명윤의 동료들이 큰 화를 입었다. 그의 과거 합격도 무효가 되었다. (‘김명윤전’, <기묘록보유: 추록>)

그러나 김명윤은 결코 벼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옛 동료인 신잠을 만나서, 우리는 곧 다시 등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잠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김명윤이 대답하기를, 조정에서 현량과 출신들을 세자익위사, 즉 세자를 보좌하는 관청에 임명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느 총명한 선비가 혀를 찼다. “김명윤은 자신이 그 벼슬을 하고 싶어서 이런 소문을 만드는 것이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김명윤은 곧 익위사의 세마가 되었다.(‘김명윤’, <해동잡록> 2)

김명윤의 출세 욕심은 끝이 없었다. 다시 과거장에 출입해 결국 문과시험에 급제를 했다. “조광조의 동료였던 선비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많은 선비들이 그를 비난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후 명종이 즉위했다. 외척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윤원형을 비롯한 소윤이 윤임으로 대표되는 대윤과 싸워 권력을 쥐었다. 변화를 예의 주시하던 김명윤이 이번에는 소윤에 가담했다. 이미 그는 경기감사라는 고관이었으나 부귀영화를 위해 흉악한 음모를 꾸몄다. 명종의 배다른 아우 계림군 이유를 무함한 것이다. 윤임이 장차 계림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또 봉성군 이완까지도 무고했다. 이완은 김명윤의 처가 쪽 친척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역모란 가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봉성군은 머리가 영특하여 장차 화근이 될 수 있다. 미리 없애서 나라를 안정시키자고 했다.(‘김명윤 상변’, <을사전문록>)

이런 음모로 김명윤은 위사공신이 되었고, 재상으로서 광평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윤원형도 권력을 잃었다. 김명윤은 다시 변신했다. 그는 경연에서 을사사화로 인해 많은 선비들이 죄 없이 희생되었다며 복권을 주장했다. 아울러 남명 조식과 일재 이항 같은 재야의 선비들을 불러 높은 관직을 맡기자고 했다.(<선조수정실록>, 선조 즉위년, 10월5일)

제아무리 약게 굴어도 세상을 영원히 속일 수가 있을까. 언관 백인걸이 그를 면박했다. “그대는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다.” 원래 이 말은 변화무쌍한 부처님의 화신이라는 것이지만, 백인걸은 김명윤의 간사함을 비웃은 것이다. 사람들은 백인걸의 비판을 옳게 여겼다.(<선조수정실록>, 선조 즉위년, 10월5일)

고봉 기대승은 경연에서 김명윤의 비행을 고발했다. “김명윤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봉성군이 억울하게 죽은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조정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드디어 선조는 김명윤의 벼슬을 빼앗았다. 그래도 선비들의 분이 풀리지 않았다. 선조 3년(1570)의 일이었다.

얼마 뒤 김명윤이 세상을 떴다. 언관들이 상소를 올려 그의 공신녹권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자 선조는 그 말에 따랐다.(‘김명윤전’, <기묘록보유: 추록>)

왕은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김명윤은 승냥이와 범처럼 사람들을 해쳤다. 근거 없는 말을 교묘하게 꾸며 엉뚱한 화를 일으켰다. 원통하게도 중종의 어린 왕자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무고한 선비들을 모함하여 사림을 괴롭혔다.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리하여 국가에 큰 죄를 지었다.”(<선조실록>, 선조 5년 9월28일) 김명윤의 여러 가지 행적을 볼 때 틀림없는 평가였다.

정녕 사람이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존재이다. 김명윤의 얼굴은 아름다웠고 말솜씨도 뛰어났다. 한때는 그를 단아한 선비라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일생이 어떠하였던가. 화를 피하려고 숙직을 바꾸었고, 출세를 꿈꾸며 의리를 잊은 채 과거장을 들락거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신이 되고자 무고한 왕자들을 해쳤다. 처음에 그는 지조 있는 선비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벼슬과 녹봉을 훔치려고 꾸민 것에 불과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필 왜, 나는 김명윤의 옛일이 이토록 상세히 떠오르는 것일까. 사소한 일에도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두르며 원칙주의자인 척하는 어떤 사람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한없이 청고(淸高)하고 개결(介潔)한 정의의 사도쯤으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때 내 판단이 아주 흐렸던 모양이다. 단박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로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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