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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生老病死).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지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 복지국가에선 이 숙명을 좀 더 순화시키려는 집단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행해왔다. 아마도 그중에 질병에 대한 대처가 가장 성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영국 복지제도의 자존심인 국민보건서비스제도, 이른바 무상의료제도라 불리는 NHS처럼 경제적 문턱 없이 진료와 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안부터, 사회적 보험의 형태로 운영하여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이들의 병원비 부담을 돕는 상부상조의 미덕을 현대판으로 제도화한 방안도 있다. 국민의료비의 총량을 통제하고 의료계 내부에서 각각의 몫을 알아서 결정하게 하는 프랑스 방식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돌아볼 때 외치가 더욱 돋보이지만, 결국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고 바꾸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목표라면 이를 위해서는 복지정책이 가장 주효하다.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문재인케어(문케어)’, 즉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개혁정책의 성과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정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문케어’ 정책의 핵심 방향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치료의 범위를 확대하고 환자들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병원에 가면 내던 특진비가 없어졌고, 초음파 사용 시의 환자부담이 일부 경감되었다. 앞으로 4인실이 아닌 상급 입원실의 병실료 인하와 MRI 비용의 경감 등이 시행될 것이고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인구집단별 그리고 소득수준별로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상한선을 더욱 낮추게 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3800여개에 이르는 진료항목들, 소위 비급여항목들을 건강보험의 관리항목으로 넣어 환자부담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인 현재 시점에서 문케어가 아직도 피부에 와닿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년의 시간이란 갈급한 국민에겐 긴 시간이고 제도의 개혁과 성과 도출에는 여전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지치고 속아온 민생은 그러한 집권세력의 이유있는 변명에 관대하지 않다.

문케어 성공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는 비급여항목을 없애고 환자부담 수준을 낮추는 데 필요한 건강보험재정을 늘리는 데 누가 기여할 것인가에 있다. 우선은 20조원 가까이 쌓여있는 건보재정 여유분과 재정지출 절약분, 그리고 7조원에 이르는 국고지원의 확대 등으로 성과를 낸다지만 국민이 체감할 만한 재정의 확보가 가능할지 친복지진영에서도 의구심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성공의 첫걸음은 보수정부 10년 동안 서툰 개입과 재원부담 회피로 의료공급자와 시민사회·노동단체로부터 불신을 받아왔던 정부가 건강보험의 공공성 확보라는 철학하에 일관되고 신뢰감 있게 이해당사자를 대해 나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국고지원 폭을 파격적으로 확대하여 국민의 체감도를 높이고 의료계의 불균형적인 수지구조를 맞추는 일에도 노력해야 한다.

문케어의 성공은 단지 건강보험제도 내의 개혁이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 및 건강보장체계의 정상화와 함께한다. 공공보건 강화를 통해 지역주민의 질병을 지역사회 안에서 예방하도록 하고, 보건복지의 결합을 통해 통원 및 입원 수요를 줄여나가고 공공병원 비중을 높여 영리로 치닫는 구조를 적절히 제어하고, 공공성을 수용하는 의료공급자의 양성, 의료기관 간의 역할 분담, 적정 수가에 대한 과학적 접근, 국민의료비 적정 수준 합의, 주치의사제나 상병수당 같은 필요한 제도의 도입, 빈곤층의 보험료 부담 경감책 등이 함께 연동되어 개혁되어야 한다.

올해로 우리나라에 건강보험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 40년이 지나고 있고, 전 국민에게 적용된지 햇수로 30년에 이른다. 한국 복지의 자부심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자리매김하고, 우리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문케어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교수 사회복지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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