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물관리를 담당하는 공기업인 K-water에 30년간 재직하면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물관리 기능 일원화가 추진되었다. 2006년 8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환경부와 건설교통부가 공동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물관리기본법을 입법예고하였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물관리에서 잃어버린 10년인 셈이다.

다시 새 정부 들어 물관리 일원화 추진이 결정되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로 분산되어 있는 수량과 수질관리 기능을 환경부로 일원화하여 일관된 체계 내에서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일원화 정책결정 과정과 내용에 대해 일각에서 논란이 있다.

먼저, 정책결정 과정의 타당성에 대한 것이다. 일부에서 일원화가 전격적으로 결정돼 충분한 논의가 부족하였다고 주장한다.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켜야 할 가치로서 충분한 검토와 공감대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물관리 일원화는 지난 30년간 정부·학계·전문가를 비롯한 시민사회 모두가 한결같이 제기한 문제로, 수많은 논의를 통해 ‘정책결정자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해 왔다. 이제 정부가 의지를 보여줬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들이 동일한 내용의 공약을 제시하였을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니 실천에 옮길 때라고 본다.

다음으로, 규제기능과 개발기능의 분리와 견제에 대한 것이다. 심판(규제)이 선수(개발) 역할까지 병행하는 것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부처는 물 관련 20여개의 개별 법률에서 정한 바에 의해 규제와 개발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각각 기능과 업무영역이 분할되어 있다.        

즉,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물관리 기능과 업무의 통합 이후에 제도화해야 규제와 개발의 역할 분담은 실현성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오히려 국민적 입장에서 볼 때 선행되어야 할 견제 방법은, 우리가 쓰는 물에 대한 각 기관의 물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이다.

마지막으로 기능 통합의 범위에 대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생활용수, 공업용수와 더불어 농업용수 기능도 같이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용수에 대해서는 국가보조 형태의 농업 기반시설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어, 물관리의 수익자부담·원인자부담 원칙 적용의 어려움 등 단기적 통합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물 이용량의 41%를 차지하고 있는 농업용수 비중을 고려하면 물기본법 제정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추진해 가야 할 과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물관리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 국민의 3.5%인 186만명이 상수도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농어촌과 도서지역은 물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매년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있으나 물관리의 성과 측정이 되지 않아 부처 간 중복투자에 따른 비효율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가뭄·홍수·수질오염·생태계 악화 등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또한, 지역 간 물 격차로 인한 갈등이 대립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물 서비스와 관련한 중소기업과 공생하고 이를 토대로 해외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이렇듯 복잡·다양해지고 있는 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물관리 컨트롤타워에 의해 수량과 수질·재해예방, 물산업이 일관된 체계 내에서 통합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기존 수자원 시설의 효율적 활용과 합리적 물 배분을 통한 물 이용과 수질·생태환경의 조화, 영세한 국내 물기업 육성과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통합체계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울러 물관리 비용부담체계의 정비를 통해 상류와 하류, 도시와 농어촌지역, 중앙과 지방 간 균형서비스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환경성과 평가보고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수량과 수질에 대한 정책기능을 통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우리의 물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이학수 K-water 사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