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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리에는 7기의 핵발전소가 몰려 있다.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도다. 단위면적당 핵발전 설비용량도 세계 최고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 30㎞ 이내의 인구는 400만명에 육박한다. 핵발전소 입지로는 최악이다. 핵산업계는 이곳에 신고리 4·5·6호기 등 3기의 핵발전소를 추가 가동하려고 한다. 인간은 ‘불의 위력’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과학기술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 지속가능한 발전(發電) 대안은 없는가. 

논리적이든 즉각적이든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해보자. 고리 핵발전소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핵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산, 울산, 양산, 정관의 400만 주민들은 핵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방재시스템은 무리 없이 작동할까. 국가는 컨트롤타워로서 기능할까. 복구는 가능할까. 비용은 얼마나 들까. 고리 핵 사고는 여타의 사태와 다른 상황으로 퍼질 여지가 높다. 교통사고 같은 사건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갯벌 매립과 산지 난개발, 댐 건설과도 다른 차원이다. 고리 주변의 400만 주민들은 국가와 함께 ‘멜트다운’할 가능성이 높다. 회복할 수 없는 국가 불능 상태로 들어가며, 국가 시스템은 종말로 치달을 것이다.

원전 건설 공사가 일시 중단된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공사 현장. 건설 중단에 따른 보상 등 정부와 한수원이 관련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9년 스리마일,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의 돌이킬 수 없는 핵 사고는 모두 핵발전소 선진국에서 발생했다. 미국, 소련, 일본은 당시 핵발전소 안전성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거나 기초과학을 선도한 나라들이다. 과학기술은 미래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를 확신하지는 못한다. 핵발전은 원자력문화재단의 광고처럼 ‘꿈을 키우는 에너지’가 아니다. 오히려 정의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걱정 많은 에너지다. 대통령의 말처럼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은’ 에너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핵산업계와 관련 교수들은 즉각 반발했다. ‘에너지는 현 정권을 넘은 국가의 문제다’ ‘제왕적 판단이다’ ‘수십년간 탈핵팔이를 해온 환경단체에 넘어갔다’는 비평을 지금도 쏟아내고 있다.

핵 사고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했다. 스리마일은 노동자 한 사람의 실수, 체르노빌은 과학자들의 실험, 후쿠시마는 자연재해로 일어났다. 어디서 어떻게 튈지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의 혁명적 진보는 정의, 윤리, 아름다움의 관점과 함께 가야 한다. 기술의 올바른 사용은 과학만이 아니라 철학, 윤리학, 미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대한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핵산업계가 쌓아올린 핵발전소 물량과 안전 신화에 감탄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 존립과 인간성 회복, 탈핵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 시작은 공론화 마당에 펼쳐진 신고리 5·6호기의 백지화 여부일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시작으로 ‘불의 위력’을 다시 살펴보자. 할매들의 눈물을 타고 흐른 밀양송전선로를 걷어낼 수 있다. 가동을 앞둔 신울진 1·2호기와 신고리 4호기는 반드시 필요한지 다시 평가하자. 핵발전과 석탄화력 대신에 신재생에너지를 선택하는 것은 국제적 흐름이며 생존의 조건이다. 나아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제 모습을 갖추면 ‘탈핵 한국’의 길이 보일 것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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