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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 한다. 그렇다면 IT 상상력은, IT 생활지수는 어떨까? 얼마 전 여덟살짜리 아이의 겨울 스포츠를 위해 구립 체육센터에 접수할 때의 일이다. 센터 홈페이지에서 어렵사리 회원가입을 했다. 액티브엑스는 말 할 것도 없고 개인인증을 위해 휴대폰 번호와 그 외 별의별 정보를 다 제공하고 겨우 아이디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의 축구 프로그램은 신청할 수가 없었다. 마흔 중반의 나이로는 8세 미만의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아이디로 신청해야 했다. 망설인 끝에 아이의 정보를 기입했지만 홈페이지는 개인인증을 위해 아이 명의의 휴대폰 번호를 요구했다. 할 수 없이 해당 업무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역시나 ARS를 통해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휴대폰을 만들거나 공공 아이핀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이 글의 독자는 당시 내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다. 직접 방문한 후 담당자에게 따졌더니 그 역시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위’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단다. 누가 이런 교활하고 어리석고 참담한 정책을 내놓았는가? 아이의 체육 활동을 위해 휴대폰을 만들고 공공 아이핀을 만들게 한 것은 어떤 상상력인가? 그 어떤 온라인 서비스도 휴대폰 없이는 불가능하게 한 것은 누구의 상상력인가? 개인에게는 그렇게 많은 잠금장치를 요구하면서도 기업과 정부는 개인정보를 왜 이토록 허술히 관리하는가?

여덟살 아이의 체육활동을 위해 부모는 휴대폰을 사거나 아이의 공공 아이핀을 등록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여덟살 아이의 체육활동은 부모나 법적 보호자의 책임 아래, 그것을 보장하는 국가의 합리적인 IT 규율 아래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미성년자와 매체물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청소년보호법’의 ‘가정의 역할과 책임’(3조) 및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5조)도 이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IT 정책은 미성년자에게 휴대폰을 사고 공공 아이핀을 만들라고 한다. 휴대폰이나 공공 아이핀 역시 부모의 책임 하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정책은 옥상옥이거나 어린 미성년자를 무책임하게 온라인으로 내모는 신호일 뿐이다.


공공 아이핀(I-PIN) 홈페이지 _ 공식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필자는 약 1년간 미국에 살면서 아이디 하나로 우리 아이는 물론 조카들의 지역 스포츠 활동을 아무 문제 없이 처리한 적이 있다. 개인 아이디와 배송받을 주소, 결제카드 정보만 제공하고 전 세계 어디서든 상거래도 할 수 있었다. 액티브엑스니 휴대폰 인증이니 해서 개인을 귀찮게 굴지도 않았을뿐더러 제3자로부터 귀찮은 메시지가 오지도 않았다.

개인인증은 대한민국 주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해야 한다. 국민주권은 온라인 영역에서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최소한의 정보 제공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보안책임 역시 이용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가 일차적으로 져야 한다. 이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타인에게 노출시키지 않는 한 국가는 그의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 IT 이용자의 사생활을 무례하게 침입하고서도 책임지지 않는 약탈적 상상력, 빈곤한 창의성은 IT 생활지수를 갉아먹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 행복, 국가 경쟁력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임종수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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