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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법보다도 국민들에게 미움을 받는 법이 됐다. 환영받지 못하는 단통법의 중심에는 이동통신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 문제가 놓여 있다. 초창기 사업자들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영업을 했다. 그러나 가입자가 포화상태인 최근까지도 국내 이통사들은 여전히 요금 경쟁을 피하는 대신 단말기 보조금을 통한 영업에 의존해 왔다. 올 초에는 이통사들의 영업정지 사태를 불러올 정도로 시장이 과열됐고, 일부 신규 가입자들에게만 과도한 보조금 혜택이 집중되자 이런 혜택을 보지 못한 고객들의 불만이 커지게 됐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조사와 통신사들이 휴대폰 가격에 자신들이 지급할 보조금을 포함시켜 단말기 가격을 부풀려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동통신시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커지자 정부에서는 떠밀리듯 단말기 가격거품을 없애고 신규 가입자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기존 가입자에 대해서도 요금을 인하해 모든 가입자에게 차별없이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면서 단통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시행과 동시에 정부의 기대는 무너졌다.
단통법이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은 단말기 가격거품을 없애기 위한 단말기 보조금 분리공시제가 단말기 제조사와 기획재정부에 의해 무력화된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통사들이 단통법 시행으로 부담하는 보조금이 현저히 감소했지만 그 돈을 다시 소비자들에게 돌려주도록 하는 적절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간 통신사 보조금을 없애거나 감소시킬 경우 그 이익이 통신사들의 요금과 서비스 경쟁을 통해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이통사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단통법을 시행, 결국 이통사들이 요금인하 생색만 낸 채 보조금 감소로 발생하는 이익을 대부분 가져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정의당과 시민단체들이 22일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앞에서 보조금 분리공시제 도입 및 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 통신요금 대폭 인하 등을 요구하며 단말기 유통법 개정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시장참가자들은 서둘러 단통법 본래의 목적인 단말기 가격거품을 해소하고 통신사들이 보조금 제한으로 얻는 이득을 소비자들에게 골고루 돌려주도록 단통법과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단말기 보조금 분리공시제가 당연히 시행돼야 한다. 단말기 가격을 외국보다 부풀려 파는 가격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소비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단말기 보조금 제한으로 인한 혜택은 통신사가 아니라 가입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그 방안으로 통신요금의 기본요금을 없애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본요금이란 이동통신 서비스의 초기설비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가입자들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통신사들은 이미 초기 투자비의 대부분을 회수했다. 통신사들은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기본요금을 폐지함으로써 전체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 불과 20여일이 지난 지금 단말기 가격거품, 독과점적인 이동통신시장 구조로 인한 폐해, 감독기관의 무능력 등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이 이동통신시장의 민낯을 적시할 수 있는 이 시점이 오히려 이동통신시장 개선을 위한 최적의 시기일 수 있다. 국회와 정부는 그간의 관성에 물들어 사업자의 이익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공공적 성격을 가진 이동통신 서비스를 모든 국민들이 편리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국민 입장에서 충분히 헤아려 단통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을 개정해주기 바란다.
조형수 |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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