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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은 공공성이 강조되는 교육기관인가? 유치원 원장의 사유재산인가? 비리 사립유치원의 명단 공개 이후 연일 계속되고 있는 쟁점이다.

사립학교의 경우는 어떨까? 사립학교 비리의 대명사로 불리며 그 판결 결과가 사립학교제도의 시금석으로 작용해온 상지대에 대하여 최근 주목할 만한 법원 결정이 있었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은 1993년 사학비리를 저지르고 쫓겨난 뒤 여러 차례 복귀와 학교 재장악을 시도했다. 그는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9월 김종철 연세대 교수 등 9명을 상지학원 정이사로 선임했던 것에 대해 “종전 이사들이 상지대의 정이사 추천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이사선임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얼마 전 제기했다. 아울러 이사 선임의 효력을 취소소송 판결 전까지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같이 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18일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들이 '교육부의 비리유치원 비호·방조에 대한 감사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서울행정법원은 “학교법인 설립 목적의 수호라는 보충적 지위에서 더 나아가 종전 이사 등의 경영권 내지 재산권을 회복시켜 주거나 이들의 지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학교 내지 학교경영권을 재산권의 대상으로 보는 사고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전 이사들에게 과반수의 정이사 선임 추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 결정은 2018년 6월 사립학교법 시행령에서 종전 비리 이사가 포함된 이사 협의체가 새로운 정이사를 추천할 경우에 전체 후보자의 과반수 미만만 추천할 수 있도록 제한하기로 하고 상지대에 이를 적용하였던 것에 대하여 법원이 정당성을 인정한 최초의 결정으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2007년 대법원은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던 상지대에서 임시이사들이 변형윤을 이사장으로 하는 9명을 정이사로 선임한 것에 대하여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에 대하여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재산권 등을 근거로 ‘설립자로부터 이어진 이사들의 인적 승계’를 박탈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김문기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과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종전 이사 등과의 인적·재산적 연관성의 확보가 아니라 설립목적 등이 구체화된 정관을 통하여 유지·계승된다는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 그리고 이번 행정법원의 결정 등으로 상당 부분 극복됐다.

그런데 사립학교에 대하여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재산권을 주장하면서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건 퍽 익숙한 논리가 아닌가. 바로 최근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로 촉발된 교육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안에 대하여 한유총이 ‘사립유치원은 설립자의 사유재산이므로 수익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다르지 않은 논리이다.

위 2007년 대법원 판례에는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지칭된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 김영란, 전수안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들은 ‘학교법인은 기본적으로 민법상 재단법인에 해당하는 것이고, 다만 그 조직·운영에 관하여 법적 규제와 행정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사학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운영되는 특수법인’이라고 하여 학교법인의 공공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이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이번 행정법원 결정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사립학교법 제1조는 사립학교의 자주성뿐 아니라 공공성도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5조 제2항이 교육의 자주성을 규정하면서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학생·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사립학교의 자주성은 학교의 자치, 즉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자치를 의미하는 거지 설립자나 학교법인의 축재 수단이나 족벌 지배 및 경영권 세습으로 이해돼선 안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립유치원도 유아교육법에서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 설치되고, 누리과정에 따라 국가에서 상당액의 지원금을 받는 이상 공공성을 지닌 교육기관의 정체성이 우선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이 사유재산임을 근거로 유치원 원장들이 각종 편법을 용납해 달라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최근의 유아교육법 등 관련 법 개정과 국가회계시스템의 사립유치원 적용, 국공립유치원 확충 등 일련의 공공성 강화 정책은 교육계 묵은 적폐를 도려내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립유치원과 함께 사립학교에 있어서도 공공성 강화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성공적으로 진행되길 희망한다.

<김영준 | 민변 교육·청소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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