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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2일 서울 숙명여고 시험문제·정답 유출 사건에서 실제 유출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구속된 이 학교 전 교무부장 ㄱ씨는 물론 그의 쌍둥이 딸들에 대해서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ㄱ씨는 지난 5차례의 중간·기말고사에서 문제와 정답을 유출해 딸들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ㄱ씨와 쌍둥이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사건의 최종 진실은 향후 법정에서 판가름나게 된다. 하지만 정답이 메모돼 있는 쌍둥이의 ‘암기장’이나 ‘포스트잇’ 등 경찰이 확보한 각종 직간접적 증거와 정황들로 볼 때 유출의 개연성이 매우 높다. 경찰의 발표대로라면 잘못된 ‘부정(父情)’이 자신과 딸들의 인생을 망치고 많은 학부모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안겨준 사건이다.

시험지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강남 숙명여고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학교 정문 앞에서 학교의 해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우철훈 기자

이번 사건으로 고교 내신에 대한 신뢰도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고2 학생들이 치를 2020학년도 대입에서 전국 4년제 대학이 모집인원의 77.3%를 수시모집으로 선발할 정도로 수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수시에서는 교과 성적 등이 포함된 내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신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 대입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숙명여고 사건 외에도 최근 모 고교 기간제 교사가 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성작을 조작해줬다가 적발되는 등 내신 관리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이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입에서 수시 비중을 줄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정시모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시 확대 요구는 학생들의 운명을 사교육이 가름하는 과거의 잘못된 교육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또한 정시 확대는 안 그래도 시험 성적에 매달리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은 수능에 맞춰진 주입식 학습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21세기가 원하는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길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교육부는 교사와 자녀들을 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를 도입하고 시험지 보관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 같은 조치 등을 통해 내신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왜 답안을 훔쳐서라도 시험만 잘 보면 된다는 ‘시험만능주의’, 친구들을 이겨야만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무한경쟁주의’에 빠져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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