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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소방방재청 국정감사에서 여야 한목소리로 많은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 소방장비의 노후 문제와 골든타임, 인명구조장비의 취약성 등이 주 내용이다.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는 물론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이러한 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화재안전과 직결되는 더욱 주요한 사항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화재예방이다.

소방의 역할은 크게 화재예방과 진압, 구조구급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화재진압과 구조구급은 사후적 성격이 강한 업무이다. 예방은 말 그대로 사전적 성격이 강하다. 사후 업무를 강화해 화재의 확대를 막고 원활한 응급 구조 활동을 수행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 대상물에 이미 설치된 소방설비가 화재를 조기에 진화하거나 제어한다면 사후 활동도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이는 사전 예방의 중심인 소방시설과 사후 활동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방시설과 직결된 산업은 곧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더욱이 전문산업 중 하나인 소방공사는 하도급에 의존해 공사를 수행하고 있어 사실상 예방의 중심에 있음에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3년간 790개 공공기관의 소방시설공사 발주금액은 1252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소방공사업체에 하도급된 금액은 655억원으로 발주금액 대비 52.3%에 머문다. 제대로 된 소방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발주방식이다. 지금의 법체계에서는 소방시설공사를 일괄(통합)발주하고 낙찰받은 건설대기업은 중간마진(35% 전후)을 취한 후 대략 52% 정도에 하도급한다. 이처럼 적정한 공사비가 투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방대상물이 화재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일괄발주로 인해 전문소방공사업체는 입찰 기회마저 박탈당하면서 건전한 경쟁조차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괄발주는 건축공종과 소방공종을 함께 포함해 발주하는 것을 말한다. 각각의 면허를 보유한 업체만이 입찰에 참여하도록 자격을 제한하는 구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소방공사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건설업 면허를 보유해야만 하는데, 잘 알지도, 실제로 필요하지도 않은 건설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방분야에서는 소방공사의 분리발주를 끊임없이 외쳐왔다. 그렇다고 분리발주가 건설업체의 입찰 참여를 제도적으로 막는 것도 아니다. 소방시설업 면허를 등록한 업체가 모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발주자에게는 선택권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제52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소방관들과 함께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과 정비로 안전시설에 대한 적정 공사비가 확보되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소방산업은 꾸준히 양적·질적 성장을 해오고 있다. 소방전문공사업체가 5083개에 이르고 소방학과 전공자도 65개 대학에서 매년 3900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기술력·사업수행능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전문공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소방시설의 전문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점차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과거의 악습과 관행이 만연하고 있어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기에 안전을 강조하기에 앞서 ‘무엇이 문제인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기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입찰 기회를 동일하게(분리발주) 부여해 공정한 경쟁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양질의 소방시설물이 구축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공사에서의 답은 바로 분리발주의 조속한 시행이다.


최진 | 한국소방시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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