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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6일 한 경제단체에서 일하던 20대 여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단기 쪼개기 계약과 초과근무, 휴일근무, 사내 성추행 등 갖은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가 정규직 전환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자 삶을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 표면화된 유명 출판사 상무 성추행 파문도 17개월 동안 수습사원으로 지내던 20대 피해자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맞닥뜨린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청년노동은 이렇듯 고용 불안정,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인격적 대우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법령에 어긋나는 조건의 비합리적인 노동을 젊은 직원에게 의도적·자의적으로 강요하는 기업을 일본에서 ‘블랙기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노동착취가 일상적·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악덕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층의 취업난을 악용해 그들을 인턴·수습·계약직으로 대거 채용한 뒤 혹사시키거나 과도한 매출 부담을 지우는 등 소모품으로 써먹다가 버리는 식이다. 블랙기업은 노동자의 우울증과 자살, 성추행 피해 등을 일으키고 노동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의 청년노동운동 단체인 포세(POSSE)는 1500건 이상의 노동상담과 조사활동 결과를 토대로 블랙기업을 선정·고발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청년유니온,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겠다는 취지의 블랙기업 운동 선포식을 열고 면접보는 청년들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어제 청년유니온과 민주노총이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의 시작을 선포한 것이 눈길을 끈다. 청년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인턴·계약직 일자리를 얻은 뒤 ‘취업 후 취업활동’에 들어가거나 정규직 전환의 ‘희망고문’ 속에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년노동 문제를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이들은 블랙기업 제보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고 한국형 블랙기업 지표 개발, 블랙기업 시상식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사회적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청년유니온의 말대로 지금의 심각한 청년노동 문제는 청년의 잘못이 아니다. 청년의 삶을 파괴하고 노동시장을 어지럽히는 블랙기업의 문제 또한 기업과 노동자의 개별적인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적 문제인 것은 당연하다. 비정규직 문제, 더 나아가서는 노동시장 규제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유니온 등이 추구하는 블랙기업 운동이 블랙기업을 퇴출시키고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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