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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당구장의 다이는 반듯한데 왜 우리 학교 제도판은 반듯하지 못한가’라는 건축학과 학생과, ‘영화 실습과제를 찍어서 스크린에 쏘지 못하고 흰 벽에 비추어서 발표한다’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수원대 학생들이 등록금 환불 소송을 시작한 게 2013년 7월이다. 그리고 5년 만에 대법원이 학생 42명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원대 학교법인 고운학원과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하여 학생들에게 각 재학기간 1년당 3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최종 확정하였다(대법원 2016다34281호 판결). 이로써 과거 재학했던 학생들도 추가로 소송을 제기하여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7월 소송 제기 당시 수원대는 학교에 쌓아둔 적립금이 3000억원을 넘었다. 그런데도 등록금 환원율(등록금 중 교육에 쓰는 비용)이 70% 정도에 불과했고,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는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 평균의 41%, 학생지원비는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 평균의 8.98%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실험실습실은 물이 새고, 실험도구들은 고장 나거나 쓸모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과 이사장은 개인적 목적의 출장에 교비를 사용하기도 했다.

법원은, ‘수원대는 교육법과 교육기본법이 요구하는 교육시설 등의 확보 의무를 다하여 학습자의 학습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이월·적립금을 부당하게 운영하면서 전임교원 확보율과 교육비 환원율,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 등이 모두 대학평가 기준에 미달함은 물론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의 통상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당시의 기대나 예상에 현저히 미달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으므로 그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실한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잠재력 발전 가능성의 손상이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미래 전망의 훼손이며, 이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하거나 복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대학 등록금이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등록금이 비싸다면 교육의 질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한국 대학들의 교육환경은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편이다.

이러다보니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학생들의 교육에 사용되어야 할 등록금이 다른 데에 쓰이고 있다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 등록금 중 상당 부분을 이월하여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러한 이월·적립금은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될 여지가 크다. 등록금을 받아 교육에 쓰지 않고 엉뚱한 곳에 쓰거나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두는 행태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학의 요직에 앉아 있는 설립자 후손이 임의대로 처분하여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실제 교육의 질에 비하여 과도하게 비싸다는 점을 확인해준 최초의 판결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을 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학교의 설립·경영자인 학교법인뿐만 아니라 이사장과 총장에게도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움으로써 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사립대학들의 이사장과 총장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영기 변호사·민변 교육청소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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