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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제, 화장품, 불로장생, 연금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을 연결하는 것 중 하나가 ‘수은’이다. 현대사회에서 수은은 유해 중금속 중 하나이나, 고대 동양의 진시황은 진사(황화수은이 주성분인 광석)를 태워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고자 했으며, 서양의 연금술사들은 수은을 소금, 황과 함께 금을 만들기 위한 주요 성분으로 여겼다. 

남미의 일부 국가나 아프리카 등에선 아직도 영세한 업자들이 소규모로 금을 채굴할 때 수은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은은 광부의 건강을 해치고, 대기로 배출돼 지역을 오염시키며, 바다와 바람을 타고 북극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수은의 악영향은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 영국의 동화작가 겸 수학자인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노동자들의 수은 중독 문제를 풍자했다. 18세기 영국 상류층에게 모자는 필수품이었는데, 19세기 초에는 원단인 펠트천 제조에 질산수은을 사용하면서 노동자들이 청력장애, 경련, 정신이상 등 수은 중독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수은이 국경을 넘어 오염을 일으키고 저개발 지역이나 취약계층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09년 2월20일 국제적인 수은관리체계 도입을 결정하고, 2013년 10월10일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2017년 8월16일 발효됐는데 수은의 전 과정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채굴을 통한 수은의 새로운 공급을 차단하고 수출을 제한한다. 형광등, 전지 온도계 등 대체재가 충분히 확보된 수은 첨가 제품은 올해부터 제조와 수출입을 금지한다. 또한 산업활동에서의 배출 저감 조치와 수은 폐기물의 적절한 처리를 요구한다. 수은을 사용해 금을 채굴하는 국가는 별도의 조치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이 밖에 개발도상국이나 북극 생태계 등에 대한 책임과 지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미국은 ‘수은수출금지법’을 제정해 2013년부터 수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그리고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117개국이 협약에 동참하기 위해 비준을 끝냈다. 

한국도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2014년 이 협약에 서명했다. 정부는 2019년 11월22일 비준을 완료하고 90일째 되는 올 2월20일 국내에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협약의 안착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제도적 기반, 즉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의 수은 배출기준 강화,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에 수은 항목 신설, 수은 수출승인제도 마련, 규제 대상 수은 첨가 제품 관련 법제도 정비 등 수은 관리체계를 구축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인류는 수은의 유해함을 알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수은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이에 국제사회는 수은의 현명한 관리를 선택했다. 한국도 그 길에 동참했고 국제사회와 함께 협약을 충실히 이행해나갈 것이다.

<박천규 |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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