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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신개념 꼰대

opinionX 2017. 7. 19. 10:57

‘꼰대’란 말의 어원은 여러 가지다. 어원을 찾는 것도 꼰대의 특징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늙은이나 선생님’을 뜻하는데 보통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 주름이 많다는 의미로 번데기의 경상도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라는 주장과 프랑스어로 백작인 ‘콩테’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완용 등 친일파가 자신을 ‘꼰대’라고 자랑스럽게 칭했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은 남자 꼰대를 ‘아재’라는 약간 비굴하고 순화된 명칭으로도 부른다. 소통을 하면 ‘아재’, 소통을 하지 않으면 ‘꼰대’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재라 불러주기를 바라는 꼰대의 애절한 심사일 뿐 그게 그거다.

자신이 꼰대인지 아닌지는 소셜미디어에 다양한 판별법이 있으므로 생략하고, 내가 생각하는 꼰대의 기준은 이렇다. 첫째, 나와 다른 대통령 후보를 찍었다고 말하는 자식에게 섭섭함이 들 때, 둘째, 회식에서 고기를 제대로 굽지 않아 결국 내가 나설 때, 셋째, 엘리베이터에서 버릇없는 아이가 인사 안 하고 빤히 쳐다볼 때 쥐어박고 싶으면 꼰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꼰대는 변화에 둔감하고, 권위적이고, 이기적이고, 조직에 암적 존재이며 적폐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꼰대의 연령기준은 없으나 일단 40세가 넘으면 자격이 주어진다. 지금 꼰대라 불리는 50~60대는 자기 아버지 세대를 꼰대라 부르면서 자랐다. 전쟁과 기근, 농경, 산업, 정보사회를 모두 겪고 살아남은 괴력의 아버지 세대를 닮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새로이 진화된 꼰대가 되었다.

사실 지금의 꼰대들은 서럽다. 내가 왜, 언제, 어떻게 꼰대가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꼰대질이 주위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모르는 게 꼰대의 속성이다. 모르기 때문에 고치려는 생각도 없다.

꼰대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지만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표정 관리를 한다. 소셜미디어보다는 자기가 보는 신문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최소 9명 이상의 대통령을 겪어봤기 때문에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다.

꼰대는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배웠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으면서도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잘 알고 있다. 집착도 강하지만 체념도 빠르다. 꼰대는 ‘산은 높낮이가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 같은 말을 좋아한다. 조직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꼰대는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청춘’이란 시를 사랑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로 결정짓는 꼰대에 동의할 수 없다. ‘젊은 꼰대’도 있고 ‘늙은 꼰대’도 있다. 늙은 꼰대는 대들면 일단 주춤한다. 냉온탕을 다 겪어봤기에 눈치가 백단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젊은 꼰대’이다. 젊은 꼰대는 권위적 조직문화에 태생적 금수저를 겸비했기에 통제 불능이다. 꼰대는 나이 먹어 낙인찍히는 주홍글자가 아니다. 꼰대 꿈나무, 꼰대 유망주란 말처럼 어린아이도 꼰대가 될 수 있다. 이제 꼰대의 의미는 나이와 성별과 시대를 초월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인재 |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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