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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즈음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전공은 문화예술경영이라는, 2009년 당시는 국내에서 생소한 학문이었다. 평소 관심 분야가 대중문화이다 보니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게 발단이었다. 결과는 3.5 대 1의 경쟁률을 물리치고 합격. 전공 관련 서적을 사재기하고, 주말에는 영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의 주인공처럼 책과 논문에 파묻혀 지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학시절 전공이 경영학인지라 수월하게 수업을 즐겼다. 문제는 문화예술과 경영학 간의 수상한 관계였다. 모든 문화예술이 미국식 경영학에서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 부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구도 이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모든 문화예술은 경제적인 결과치를 내놔야 한다는 전제하에 강의가 흘러갔다.

문화예술경영이라는 융합학문의 범주에서는 가난한 말년을 보냈던 고흐나 슈베르트는 인생낙오자와 다름없었다. 첫 학기 내내 물과 기름 같던 문화예술과 경영학의 역할을 고민했다. 모든 문화예술은 자본친화적인 객체로 존재해야만 경쟁일변도의 세상에서 대접을 받는 것일까. 돈이 되지 않는 문화예술이란 현대사의 쓰레기에 불과한 것일까. 그해 여름, 우연히 <달과 6펜스>라는 책과 만난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는 예술혼에 빠진 중년남성의 일상을 담담한 필체로 묘사한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처자식이 딸린 마흔 살의 가장이다. 직업은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는 주식중개인. 시계태엽처럼 반듯하고 안정적인 생을 위해서 선택한 삶이었다. 그런 주인공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미술가가 되겠다고 직장, 가정, 고향, 인간관계 모두를 내려놓겠다고 선포하는 찰스 스트릭랜드.

지인들은 모험적인 삶을 택한 주인공에게 냉소와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저자는 죽마고우를 배신하고 타히티섬으로 향하는 남자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그제서야 독자는 서머싯 몸이 던진 촘촘한 그물망에 낚인다. 독자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주인공의 용기와 이기심의 미혹에 조금씩 빠져든다.

고갱의 실제 삶을 모델로 한 서머싯 몸의 영악한 글쓰기는 <달과 6펜스>를 고전문학의 대열로 사뿐히 밀어 넣는다. 만약 찰스 스트릭랜드가 도시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미술가의 삶을 추가했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부르주아의 일대기로 그쳤을 것이다. 작가는 경고한다. 예술가의 길이란 경제적, 사회적 안정의 대척점에서 출발하는 길고도 복잡한 미로여행이라고.

나는 문화예술과 경영학과의 관계성에 대한 해답을 소설 <달과 6펜스>에서 발견했다.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동거인이자, 가끔씩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계약결혼의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이렇게 답했을 거다. 자신의 귀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잘라낼 정도의 자유의지가 없다면 예술혼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홍대 정문에서 산울림 소극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미술학원 간판들이 보인다. 미래의 제프 쿤스를 꿈꾸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젊은이들이 학원으로 몰려든다. 바늘구멍을 뚫고 미술대학에 입학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졸업 후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유를 대고 싶지는 않다. 예술가의 삶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6펜스가 아닌 달의 역할을 맡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입시전문 미술학원 선생으로 일하는 어떤 남성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학원 제자가 미대 졸업 후 인근 미술학원 선생으로 취직하는 경우를 보면서 씁쓸함을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예술혼을 휘날리고 싶은 욕망인자는 넘치는데 이를 수용할 시장이 없다. 잠재적 예술실업자를 뭉텅이로 양산하는 구부정한 사회구조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화실에서 붓질에 여념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다. 전업작가의 꿈은 고사하고, 마음껏 예술혼을 불태울 만한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붕어빵 찍듯이 신입생을 빨아들이는 예술대학의 정원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술혼을 단지 가격으로만 평가하려는 세상에서 불후의 명작이 나오기란 불가능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이봉호 |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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