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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다행이다. 쓰레기 대란 뉴스를 접한 첫 느낌이 이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은 인생만이 아니다. 날마다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지만 이 비닐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 페트병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런데 그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자 난리가 났다. 일명 쓰레기 대란인데, 우리는 날마다 대란 속에 살아왔다. 비단 재활용 쓰레기만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사고가 나서야 비로소 몸부림을 치며 우왕좌왕한다. 그리고 서로 탓한다. 중국이 수입을 안 해서 그렇다는 둥, 환경부가 알면서도 대책에 게을렀다는 둥 언론에서도 누구 잡을 데 없나 몽둥이를 들이댄다. 이 두더지 잡기는 대한민국의 신풍속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잘것없는 살림인데 터무니없이 늘어나는 재활용 쓰레기가 부끄러워, 어디 가서 엄마가 환경운동 한다는 말 하지 말라고, 아들한테 농담하곤 했다. 환경운동가도 농담으로 때우고 걱정만으로 지나쳤는데 누굴 탓하겠나! 이제 대란으로라도 우리나라가 쓰레기 분리수거 선진국이 아니며 여태 돈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할밖에.

1997년 여름, LA에서 하와이까지 요트로 횡단하는 경기에 참가 중이던 찰스무어는 파도도 없는 바다 위에서 이상한 느낌에 휩싸인다. 이크, 이게 뭔가, 자잘한 플라스틱 조각으로 뒤덮인 망망대해라니! 태평양 위에 존재하는 거대 쓰레기 섬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가 처음 발견된 순간이었다. 요트대회 후 그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험을 연구하는 해양환경오염 전문가가 되었고, 이 괴상한 쓰레기 더미 이야기를 ‘LA 타임스’에 기고하여 퓰리처상을 받는다.

멋진 한 사내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환경운동가들이 나라로 명명했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1호 시민으로 등록한 바 있다. 세계화는 자원과 상품, 금융의 이동뿐 아니라 쓰레기도 세계를 떠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플라스틱은 죽지 않고 이동할 뿐이라는 무서운 진실도 알려주었다. 유독 물질을 흡수한 미세 플라스틱이 물고기의 몸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오른다는 걸, 이런 난리통이 아니면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고.

쓰레기 대란은 마침내 올 게 온 것이다.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이제 대책도 같이 세워야 한다. 얼마전 인터뷰 기사에서 ‘고름 묵힌다고 살 되는 것 아니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쓰레기 문제에서 고름 좀 발라내고 싶다.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거절하니 TF를 꾸려서 베트남 등 다른 팔 곳을 알아보겠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긴 하다. 재활용업체에 세금으로 보조금을 더 줘서 앞으로는 이런 저항을 근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쓰레기 매립지를 더 넓히고, 지자체와 협상을 잘해서 자유롭게 갖다 버리는 것도 대책일 수 있다. 그런데 반복 가능성 농후한 대증요법이다.

진짜 해결은 일단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이나 접시, 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올 1월 영국 메이 총리는 2042년까지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환경보호 전략을 발표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이나 추가 비용을 물리고, 마트에서 제공하는 비닐봉지에도 5펜스(약 75원)의 가격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가오는 지자체 선거에서 우리도 이런 용감한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을까? 지도자를 잘 뽑는 일은 쓰레기 대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월드워치 연구소가 발행하는 지구환경보고서의 2010년 제목은 ‘소비의 대전환’이다. 현재와 같은 소비습관으로는 지구가 2개, 3개가 되어도 부족한데 과연 어떻게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 재미난 대안을 제시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포장이 잔뜩 된 인스턴트를 구입하거나, 상품을 요모조모 따져볼 수 없을 때는 어김없이 바쁠 때다. 도시인들은 모두 바쁘다. 그래서 시간을 소비재로 때우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 시행한 근무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개정이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여유를 주기를 기대한다. 생산과 상관없는 빈둥거림이 있어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눈에 들어오고, 미세 알갱이가 생선을 통해 내 아이 입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성찰을 비로소 할 수 있고, 그것이 시민운동의 시작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족.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엄청난 예산을 들이붓고 있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스티로폼 포장재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대체재 개발 등 젊은 인재들이 도전할 만한 과제를 주고 지원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한술 더 뜨자면, 생산자들이 포장재 이런 거품경쟁을 계속하는 건 돈 쓰고 욕 먹는 일이니 다같이 줄이자고 먼저 담합해주는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 이런 담합도 죄인가요?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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