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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파트 경비가 주민의 모욕적인 언행을 견디지 못하고 분신자살을 기도하고 끝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이 무시를 당하거나 천대를 받을 때다. 이렇게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도 많다. 그 중에서도 아파트 경비들의 근무조건은 너무도 열악하다. 분리수거, 주차단속, 야간순찰, 청소까지…. 게다가 공가(空家)로 맡겨 놓은 택배까지 일일이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고한다는 격려는커녕 주인 행세를 해가며 그들을 괴롭힌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일부 주민은 아파트 경비와의 관계를 주종 관계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반말은 예사고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모욕을 주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파트 경비도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들이 해야 할 임무인 주차단속이나 분리수거,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에도 어려움이 있다. 제대로 단속을 했다가는 십중팔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초소를 비우면 비웠다고 호통을 친다. 어떤 경비원은 주민이 안고 다니는 견공의 인상이 안 좋다고 했다가 관리실에 호출 당해 시말서를 쓰고, 어떤 이는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어린애를 안고 놀이터에 있는 것을 보고 꼬마가 딸인 줄 모르고 손녀가 귀엽게 생겼다고 했다가 관리실에서 심한 문책을 받고 결국 사표를 썼다고 한다.

내가 만난 어떤 경비원은 너무도 황당한 일을 당해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무척 괴롭다고 했다. 수년 전 초등학교 3년생 여자아이가 추운 겨울 집 문이 잠겨 밖에서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을 초소로 불러 추위를 녹인 뒤 엄마가 오시거든 가라고 했다가 뒤늦게 귀가한 그 학생 어머니에게 참기 힘든 모멸감과 치욕을 당했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대뜸 곱게 늙으라면서 자기 딸에게 성희롱을 한 것 아니냐며 삿대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 그 경비는 인간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약자들을 천한 것들로 대한다.

한 경비노동자가 경비노동자 분신사고 규탄 대회 긴급기자회견’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경비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그들도 한때는 화려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졌던 분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비들은 고령에도 가족부양을 위해, 자녀들에게 폐가 될까봐 스스로 일을 한다. 그런 경비들에게 따뜻한 위로는 못할망정 멸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 존엄의 가치와 인권을 말하지만 아파트 경비에 대해서는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들도 가정에서는 소중한 남편이고 아버지다.

사람은 누구나 한 치 앞도 모른다. 나 자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인간의 존엄은 소중한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라가 어렵고 가정이 어려울 때 그 중심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존심을 지켜 오신 우리의 아버지 경비원들이 사람대접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학록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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