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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깊고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형사고를 예방하고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매년 1000여명에 이르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1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3%, 국가 예산의 5.4%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노동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비율인 사망만인율은 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2~3배 수준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안전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제 다시 한 번 근원적인 접근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직립작업을 시작하여 4시간여만에 완전 직립에 성공, 세월호가 참사 4년여만에 바로섰다. 김기남 기자

필자는 우리나라 기간산업을 이끌어 온 전력산업에 30여년을 몸담아 왔다. 수많은 산업재해를 목격한 당사자로서, 되풀이되는 비극적 사고와 재해를 끊어내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성숙한 안전문화의 정착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안전을 바라보는 의식수준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본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인식하는 자기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듀폰사는 1802년 화약회사로 출발해 나일론, 타이벡 등을 개발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듀폰사는 모든 사고는 예방가능하다는 신념에 투철하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최고 수준의 안전문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듀폰의 창업자 E I 듀폰은 화약공장 인근에 자신의 자택을 지어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다. 폭발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동료의 생명과 안전을 동일시하는 안전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4년 만에 바로 세워진 세월호의 내부 모습이 공개됐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내부 안전조치를 마치는 다음달 10일 이후 미수습자 수색과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4·16가족협의회 제공

다음으로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안전이론에 스위스 치즈 이론이 있다. 스위스 치즈는 많은 기포로 인해 구멍이 뚫려 있다. 스위스 치즈를 여러 겹으로 배치했을 때 우연히 구멍이 동시에 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안전 측면에서 다양한 요인의 결함이 동시에 발생할 때 재해가 일어난다.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인적, 제도적, 관리적으로 다양한 시스템이 상호보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설계·작업 전·작업 중 등 단계별 안전 매뉴얼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위험을 찾아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외부전문가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빈틈 없는 안전사고의 예방이 가능하다.

끝으로 협력기업에 대한 안전지원 체계가 절실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발전산업 현장은 고소작업, 중량물 및 유해화학물질 취급 등 위험요소가 많은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영세 협력기업 및 일용직 작업자와 같은 안전취약계층에게 발생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안전취약계층을 단순한 하도급 관계가 아닌 상생의 파트너 관계로 생각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안전역량 강화를 위해 안전관리비는 낙찰률 적용을 제외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맞춤형 안전체험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의 위험 발견 시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상생의 안전지원 확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조치를 비용이나 규제로 보는 성장지상주의, 성과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값싼 드라이비트 외장재나 폴리에스테르 천막이 아니었다면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성숙한 안전문화와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 그리고 상생의 안전지원체계 구축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김병숙 | 한국서부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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