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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있게 설명한다’는 말에서 ‘조리(條理)’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나뭇가지(條)가 뻗어가듯 체계적이며, 앞뒤가 맞게 잘 다듬는(理) 것을 뜻합니다.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모두 아울러야 그 나무를 온전히 알 수 있고, 필요에 맞게 손을 봐야만 누군가에게 쉽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아아! 하는 깨달음이 오거나 졸음만 오기도 합니다.

아기가 잘 받아먹지 못한다고 ‘떠먹여줘도 못 먹냐!’며 억지로 숟가락 욱여넣을 부모는 없습니다. 이해 못하는 학동이라면 훈장님은 회초리 대신 차근한 비유를 들어야겠지요.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보다 더 많이, 깊고 넓게 공부해야 한다는 ‘한 자를 가르쳐주려면 천 자를 알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자’는 ‘한자(漢字)’, ‘천 자’는 ‘천자문(千字文)’도 뜻합니다. 한자 한 글자를 가르치려면 당연히 천자문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가르침이란 배움의 천 배 노력이라 해도 옳을 것입니다. 한자 천 자를 달달 외웠다고 천자문을 아는 게 아니듯, 많이 암기했다고 원리와 이치를 아는 건 아닐 텝니다. 단순 지식보다 여러 갈래 사이를 풍성하게 타넘으며, 한두 가지로 열을 만드는 창의와 융합이 훨씬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검색 한 번이면 다 나올 걸 여전히 달달 외워 시험을 칩니다. 그리고 어느 학생이 “하늘 천은 왜 검을 현이죠? 하늘은 파랗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그냥 외워!” “시험에 안 나와!” 또는 “진도 나가자!” 같은 실망스럽고 뻔한 답을 듣기도 할 겁니다.

스승의날은 천자문 대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탄신일에 맞춰 날짜를 잡은 것입니다. 어두운 밤 ‘어린 백성’의 등불을 만들고자 잠도 잊은 스승이 어찌 대왕뿐이겠습니까. 하나를 옳게 알려주려 천 번을 생각하는 이들도 대왕님의 그날에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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