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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보름 넘게 지났음에도 그날의 감회는 여전히 생생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벌어져서 놀랐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져서 더 크게 놀랐다. 지구상에서 서로를 가장 경계하고 적대시했던 사람들이, 마치 오랜만에 모인 가족 친지들 같았으니 말이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한 민족, 한 뿌리라는 것을 느끼는 데 말과 음식이 같다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을 테니까.

음악도 오랫동안 대립한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데 큰 몫을 했다. 남북 정상이 이동할 때는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음악인 ‘대취타’가 연주되었고, 사열을 할 때는 ‘아리랑’이 흘렀다. 이질적인 피아노와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환송 공연 역시 감동적인 한 편의 음악 서사였다.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우의를 다지기에 노래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겼던, 흥이 많은 우리 민족이 아니던가. ‘고향의 봄’을 부를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속의 아늑한 고향 마을을 떠올렸으리라. 분단의 세월이 아무리 길어도 아직 함께 기억하는 노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악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의 전통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제까지의 공연들이 그다지 커다란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청중의 마음에 다다르는 울림이 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전통에 대한 과도한 강조나 세련되지 못한 편곡도 거기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음악은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국악(國樂)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다. 국사(國史)나 국어(國語)가 아닌, 자국의 전통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 역시 적지 않다. 초·중·고 음악 교육과정에서 국악의 비중은 30%가 넘는다. 국가 차원에서 국악원을 두고 있고, 국악만 방송하는 방송국이 따로 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지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음악생활에서 국악의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작년 한 해 인터파크를 통해 판매된 공연 티켓 중에서 국악 공연이 차지하는 비율은 채 1%를 넘지 않는다. 국악방송의 청취율은 다른 방송국의 청취율과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악은 행사 때나 필요한 것일 뿐 우리의 일상과는 상관없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결혼식을 빼고는 아무도 더 이상 입지 않는 한복처럼.

상황은 안타깝지만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민족적 전통의 중요성만 강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들도 스마트폰에서 하루 종일 신나고 재미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 빠르게 움직이는 동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4시간 반이나 되는 종묘제례악이나 6시간짜리 춘향가에 공감하기를 바라기 어렵다. 광속 기술의 삶과 리듬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이니까.

국악의 현대화는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은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민족음악 악기를 포함시킨 배합 관현악이라는 특이한 오케스트라 편성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것이 가장 폭넓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편성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민족악기를 위주로 하는 편성으로 서양악기를 조선음악에 복종시키겠다”는 대담성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우리나라 국악계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전통악기를 개량하고, 대학에 전공을 두어 창작국악이나 신국악 같은 현대식 국악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옛 장단을 사용하고 국악기로 연주하는 것만으로 전통음악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은 절대로 훼손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작품의 독창성이나 참신함을 가로막는 원인이기도 하니까. 절대적 원칙과 자유로운 창작 정신은 양립하기 어렵다. 전통은 자연스럽게 묻어나야지 멋이 살아난다. 억지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국악을 진정으로 보존하려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국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과감한 변신을 두려워해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양한 시도들이 허용되고 장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럽고 훌륭한 전통이 행사용으로 전락하거나 박제화되는 불행을 피하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에 남과 북이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혜는 나눌수록 커지고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니까.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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