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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등교과서에는 27개 한자어 어휘에 한자가 병기돼 있었다. 2016년 초등교과서에는 한자 병기가 대폭 줄어들었다. 13개 한자어 어휘에만 괄호 안에 한자가 병기됐다. 도덕 3학년 교과서에 효(孝), 로(老), 자(子), 도덕 5학년 교과서에 미(美), 양(羊), 대(大), 인(忍), 심(心), 인(刃), 법(法), 선생(先生), 선(先), 생(生) 등이 나왔다. 한자 병기가 필요 없기 때문에 줄어든 것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2016년 12월30일 단 한 편의 정책 연구인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표기 방안 연구’에 의거해서 2019년 초등 5~6학년부터 교과서 집필진과 심의회가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국어 외 교과서에 300자 내에서 한자와 음·뜻을 표기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추출된 한자 300자 가운데엔 勤(근), 執(집), 戰(전), 消(소), 端(단), 競(경), 關(관), 題(제), 領(령) 등 중학교용 한자 251자와 介(개), 倍(배), 制(제), 吸(흡), 周(주), 器(기), 域(역), 境(경), 妥(타) 등 고등학교용 한자 49자가 포함됐다. 초등생에게는 어려운 중학교용 한자와 고등학교용 한자가 너무도 많이 들어 있다. 천자문에도 안 나오는 한자도 15자나 포함되어 있다. 邊(변), 驗(험), 濕(습), 緯(위), 態(태), 壓(압), 導(도), 構(구), 劇(극), 管(관), 疏(소), 菌(균), 演(연), 慾(욕), 點(점) 등이 그것이다.

정책 연구자들은 邊자를 알아야 할 이유로 수학에 나오는 평행사변형과 대응변이라는 학습 용어에서 그 근거를 들었다. 이들은 ‘平行四邊形(평행사변형)’과 ‘對應邊(대응변)’이라는 한자와 함께 한자의 음과 훈을 교과서에 제시해야만 이 용어의 개념이 파악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邊자의 음과 훈을 어떻게 풀어야 이 학습 용어의 개념이 파악되는가? ‘가 변’과 ‘가장자리 변’으로 표기하면 풀리는가? 풀리지 않는다. 邊자의 여러 뜻 가운데 ‘변 변’으로 해야 풀린다. <자전>은 ‘변 변’을 “다각형을 둘러싼 선”으로 풀이했다. 결국 수학 용어로 풀이해야만 한다. 학교 선생님이 평행사변형을 쉬운 우리말인 ‘나란히꼴’로, 대응변을 ‘짝진변’으로 풀이하면서 수학 용어로 설명해야만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다. 한자와 한자의 음과 훈만을 제시한다고 개념이 설명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선정된 한자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연구자들은 초등학생들이 假(가)자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학에 나오는 ‘가분수’라는 용어를 알려면 한자 ‘假分數’와 음과 뜻을 풀이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거짓 가’, ‘가짜 가’, ‘임시 가’로도 풀리지 않는다. 이렇게 풀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가분수라는 수학 용어는 선생님이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분모보다 분자가 더 큰 수”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교육부는 초등 5∼6학년 학습에 도움이 되는 기본 한자 300자를 선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습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학습 이해에 혼란만 더 주는 한자가 많이 선정됐다.

초등학교 수준에 맞지 않는 매우 어려운 중학교용 한자와 고등학교용 한자가 상당수 포함돼 초등학생의 학습 부담만 더 지울 게 뻔하다. 이번에 선정된 한자 300자는 엉터리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초등용 한자 300자 공표를 뒤로 미루기를 바란다.

박용규 |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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