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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에 교통사고가 대폭 증가했다. 사고발생 건수는 물론이고, 사망자수가 늘어나고 부상자수도 크게 늘어났다. 그 이전까지 모든 지표가 감소하던 추세에 비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그동안 감소했던 1년 미만 운전자의 사고 건수도 2012년도에 24.5%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경우 교통사고가 증가한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하기는 매우 어렵다. 교통사고는 운전자 및 보행자로부터 비롯되는 인적 요인과 차량 요인, 도로환경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발생하기에 명쾌한 사고원인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2년에는 의심되는 대목이 하나 발견된다. 2011년도에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이 대폭 간소화됐다는 사실이다. 운전면허 간소화로 쉽게 면허증을 취득한 초보운전자들이 운전대를 본격적으로 잡은 해가 바로 2012년도라는 사실이다.

당시 운전면허 간소화의 명목상 이유는 국민 편의와 비용 절감이었다. 시험 항목을 축소하고 운전전문학원 의무교육 시간도 줄여 주었다. 운전면허 간소화의 당초 홍보 내용은 제도 완화를 통해 서민생활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약 30만원가량의 취득비용 절감이 있었다. 그 결과 응시생은 다소 까다로웠던 기능시험의 복잡한 코스가 없어진 덕택에 운전면허를 쉽게 딸 수 있어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그러나 운전면허 간소화를 단행하게 된 숨겨진 비밀은 자동차 업계를 도와주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수순이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개정된 면허제도 아래서의 기능시험은 잠깐 동안 직진과 커브를 돌고 나면 시험이 끝나 시험이라기보다는 통과의례 수준에 가깝다. 너무 쉽게 합격할 수 있으니 시험의 의미가 사라졌다. 실제로 전국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거의 모든 응시자가 합격하고 있다. 개정 전보다 무려 두 배 이상 합격자가 늘어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곧바로 운전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운전면허시험이란 미래의 안전한 운전자를 가려내는 교통안전의 원천이 되는 제도다. 시험이 너무 쉬워 실제 도로에서 운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시험제도 자체의 존립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라 본다.

자동차면허 제도를 필기시험부터 기능시험, 도로주행시험 모두 선진국 모델로 개선하려던 당초 계획이 누군가에 의해 왜곡됐다. 대부분의 교통전문가들이 반대했지만 진정으로 안전한 운전자를 길러내 면허취득 후 사고를 줄여 사회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대전제를 포기하고 자동차산업 증진만을 생각한 옹졸한 정책으로 변질되었다.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 간소화 제도가 시행된 첫 날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첫 실기시험이 시행되었다. (출처 : 경향DB)


실제로 2012년에 증가된 교통사고 사회비용은 75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운전면허 간소화라는 명목 아래 국민의 생명과 산업의 이익을 맞바꾸는 일은 매우 부도덕한 짓이다. 지난 정부에서 과도한 환율 인상과 노후 차 세제지원 및 각종 특혜의 과보호 속에서 자동차 업계는 마냥 안주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미래의 차량 구매자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한 정부는 면허시험을 무력화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비정상화 비용을 교통사고라는 가정의 비극을 통해 오롯이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취득비용 절감은 추가적인 연수비용으로 상쇄되어 갈 것이다. 면허취득 후 바로 도로에 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도로운전연수를 꼭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연수비용은 서민에게 취득비용 감소보다 더 큰 부담이 되어 갈 것이다. 만일 경제 불황이 더 심각해져서 한계가구의 구성원이 연수비용조차 절약하려다가는 교통사고 비용으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결국 지난 정부의 도덕성 상실 속에서 국민을 ‘로드 킬’ 대상에 합류시키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운전면허증이 살인면허증이 되지 않도록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홍창의 |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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