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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수협·산림조합장 선거를 선관위에 위탁해 전국이 같은 날짜에 조합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이제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선거방식을 놓고 세간에서는 말들이 많다. 토론회는 왜 안하느냐, 왜 예비후보자 제도는 없느냐고 아우성이다. 공직선거에 있는 정책토론회와 예비후보 제도를 보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은 공직자와 조합장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정치인과 조합장은 근본이 다르다. 정치인은 정책을 비판하고 행정부를 감독하고 다른 당과 대립각을 세워 인기를 몰아야 자기도 살고 당도 살아난다. 그러나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출자하여 만든 사업체를 운영하는 전문경영인(CEO)이어야 한다. 조합장은 정치적 역량도 좋지만 자기 조합의 경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경영자로서의 능력과 역량이 훨씬 더 요구된다는 말이다. 조합장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제로 정치판에서도 정책토론회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지난 제6회 기초(시·군단위)의원 선거에서 총 1034개 선거구 중 31개 선거구에서만 토론회가 이루어졌다. 3%도 안 되는 비율이었다.

협동조합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조합장 선출을 이사회에서 호선한다. 직선을 안한다고 이들을 놓고 민주주의를 모른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농협법에는 조합장 선거를 직선, 간선, 호선으로 할 수 있도록 모두 열어 놓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도 호선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요컨대 조합장 선거에서는 정책토론회가 ‘필수’는 아니다.

예비후보자 제도도 그렇다. 조합은 상부상조의 인적단체이다. 조합장 후보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반드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하루아침에 조합장 후보에 올라갈 수가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조합원이 되고, 조합 사업에 참여하고, 협동조합을 배우고, 가능하면 대의원이 되고 이사·감사가 되어 조합 운영에 대해 알고 난 후 조합장이 되는 꿈을 꿔야 하고 그런 사람이 조합장으로 당선되어야 한다.

조합장 선거에서 유권자인 대다수 조합원은 후보자들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후보자들이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한 다리만 걸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같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오랜 기간 함께 활동해왔고, 작목반 및 각종 모임을 통해 이미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예비후보자 제도가 없으니 본인을 알릴 기회가 없다느니 선거운동 기간이 짧다느니 불평한다. 그런데 몇 주 동안에 이름을 알려 조합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는 본인 스스로 협동조합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며, 조합장 직을 모독하는 일이다. 조합장 직은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12년 서울 농협중앙회 중앙본부에서 열린 판매농협 구현을 위한 "전국농협대회"에 참가한 농협 조합장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예비후보자 제도 또한 정치판에서 인기가 별로 없었다. 지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총 1710명의 예비후보자 중 실제로 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은 902명(52.7%)에 그쳤다. 이 무슨 행정의 낭비인가. 이처럼 예비후보자 제도의 또 다른 단점은 인력과 시간, 비용이 낭비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인력과 시간, 비용이 있으면 조합원들의 복지 증진에 사용함이 옳다.

요컨대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은 선거공보, 선거벽보, 어깨띠·윗옷·소품, 전화, 정보통신망, 명함…. 이 정도로도 충분해 보인다. 정 뭣하면 조합의 홈페이지에 후보자 연설 동영상을 등재하고 조합 영업 점포에서 이를 방영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새로운 법률 조항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관련법을 뜯어 고치겠다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이는 공명선거는커녕 선거과열을 부추기는 길로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정주 | 건국대 명예교수·전 한국협동조합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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