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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가 상영되고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진흙으로 만든 최초의 여성인데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만들었다고 한다. 호기심을 못 이긴 판도라에 의해 온갖 불행이 갇혀 있던 상자가 열려서 온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판도라>라는 영화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 원전 자체가 인간에게 불행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는 결과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원전 사고는 ‘노후 원전에 지진 발생→밸브 등 중요 기기의 손상→냉각 불능→노심용융발생→발생 수소의 폭발로 격납건물의 폭발→대형 방사능 누출 사고’ 순으로 일어난다.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졸속 보수공사를 바탕으로 결정된 계속 운전, 수만개에 달하는 노후 원전의 기기 중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는 기기고장의 가능성,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 방사능 누출에 따른 비상사태에 대비한 매뉴얼 미흡 등이다.

원전 폭발이 가져오는 재앙과 혼란상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영화 <판도라>가 그리고 있는 원전 사고는 원전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는 언제든지 대형사고로 전개될 수 있다고 실제로 우려되어 온 사례들이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설계기준 지진을 초과하는 초고강도 지진에 따른 송전선로 파괴로 외부 전원 상실→해일로 인한 안전설비 침수로 비상전원 공급 기능상실→노심냉각기능 상실→노심용융→수소 폭발로 인한 원전 건물의 폭발→대규모 방사능 누출’ 순으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효율적이라 평가됐던 방재대책은 무용지물이 됐음을 우리는 목도했다. 따라서 <판도라>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히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필자는 최근 국내 일부 지역의 원전 현장을 둘러보며 현장 설비관리 실태를 확인하여 수백건의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다른 원전들도 유사한 상태로 여겨지고 있어서 설비를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사업자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주민이 참여하는 설비관리 실태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요구한 바 있으나, 사업자는 영업비밀과 국가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원천 차단하고 있다.

기존 제도권에서 잘 관리하지 못하는 현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과 감시가 강화된 현장중심 경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신고리 5·6호기 승인이 일방 통과됐다. 그리고 지반가속도 0.2g으로 설계된 원전을 0.3g으로 올리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경주 지진에 따른 지질조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민간검증을 삭제하고 모든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80여일간 정지 후 조사결과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월성원전을 재가동했다.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폐쇄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질주하고 있다.

영화 <판도라>는 원전 사고가 현장의 사소한 곳에서 시작해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있다. 원전산업계는 이를 두고 도저히 발생될 수 없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면서 논리적 모순만을 따질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장하는 등 <판도라>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하 <판도라>는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원전 사고에 대비해 항상 정신 차리고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전국 어디에서건 멀지 않은 곳에서 원전을 볼 수 있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 깨어 있는가?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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