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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태우면 여러 가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발생”하고, 횃불은 “촛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유해하니 촛불집회와 횃불시위 모두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어떤 환경과학자의 말이 나왔다. 유해물질이 발생한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촛불집회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어느 분의 간접 피부접촉에 대한 강박적 반응을 연상케 한다. 그분이 감염 위험에 지극히 민감해서 변기 교체를 고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그랬다면 하찮은 감염원에 집착한 것이고, 그 과학자도 큰 유해물질 원천을 놔두고 아주 작은 원천에 주목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기질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환기가 잘 안되는 방이나 곰팡이 냄새나는 곳에는 오래 있지 못하고, 지하상가 같은 곳은 가능한 한 피해간다. 그러나 그동안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가했어도 호흡기가 촛불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에 반응한 적은 없다. 참가자들이 대열에서 잠깐 빠져나와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조금 불편했을 뿐이다. 가장 큰 고통을 준 것은 경찰차벽 옆을 지나갈 때 코로 들어오는 배기가스였다. 심하게 불완전 연소된 공회전 매연이었으니 유해물질이 잔뜩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학자는 아마 촛불집회에 한번도 가지 않았을 테니 이런 사정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화면에 보이는 수많은 촛불에 놀라 거기에서 뿜어져나올 유해물질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현장에 가서 한번이라도 측정한 다음에 이야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를 대신해서 12월24일 중국제 간이 측정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가서 미세먼지를 측정해보았다. 그날 서울시에서 발표한 저녁 6시 종로구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공기 1㎥당 61㎍(마이크로그램)으로 꽤 높은 편이었다. 6시30분경 간이 측정기로 청운동주민센터 근처 골목길에서 측정한 농도는 75 정도로 서울시 발표와 큰 차이가 없었다. 촛불인파 속에 들어가서 측정한 농도도 76으로 초미세먼지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차벽 쪽은 촛불인파가 몰려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 많았다. 심한 곳은 두 배나 높은 140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정밀한 장치로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촛불집회 참가자는 누구나 예상한 것이다. 어떤 참가자도 촛불들 속에 있을 때 호흡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행진할 때 차벽 옆으로 가면 누구나 공회전 매연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게 된다. 사실 촛불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보다 경찰차벽의 매연이 훨씬 심하리라는 것은 촛불집회에 참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의심스러우면 간단한 장치를 가지고 가서 측정해보면 금방 판가름난다.

그 환경과학자는 촛불집회에 오는 어린이를 걱정했지만, 그가 정말 걱정해주고 대책을 고민해주어야 할 대상은 경찰차 안의 청년들이다. 이 청년들은 매연을 뿜어대는 차 안에서 창문도 열지 못하고 몇 시간 이상 줄곧 앉아 있어야 한다. 그들은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 중에서 아마 가장 많은 유해물질을 흡입할 것이다.

천안함이나 세월호 사고는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으로 원인을 밝히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촛불집회 중 어디에서 유해물질이 많이 나오는지는 쉽게 판정할 수 있다. ‘정직하게’ 과학활동을 하려는 과학자라면 촛불집회에 가보지 않아도 경찰차벽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간단한 것에도 주목하지 못하고 촛불의 유해함을 강조하는 과학자라면, 그의 주된 관심은 아마 어린이 건강 같은 것이 아니라 촛불집회를 어떻게든 흠집내는 데 있을지 모른다.

촛불집회가 거듭할수록 이런 식의 흠집내기나 촛불을 꺼뜨리기 위한 갖가지 시도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사회가 바뀔 때까지 촛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을 터이니.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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