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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크게 존경받는 조사(祖師)들의 어록을 읽다보면 “누런 나뭇잎을 흔들어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여기 돈 있다”며 우는 아이를 달랜다는 뜻입니다. 곰팡이 냄새가 푹푹 풍기는 책들에서조차 이런 말들이 흔히 나오는 것을 보면, 돈을 좋아하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또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를 추진하는 이들이 시국이 어수선한 연말을 틈타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환경훼손을 이유로 강력히 항의한 환경단체와 주민들, 문화재 파손을 염려하며 끝없이 탄원한 학자들 앞에서 그들이 흔들어 보인 것은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작성했다는 ‘경제성 평가 보고서’입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평균 73억원의 편익이 발생하는 등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건설·운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1520억원, 고용유발은 935명일 것이라 합니다. 즉 “이렇게 이익이 많은 사업이니 그만 징징대라”는 것입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소속회원들이 8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부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어코 설악을 파헤쳐 철심을 박고 콘크리트 범벅을 만들고 말겠다는 이유가 겨우 몇 십억원의 이익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강원 양양군 관계자는 경제성 보고서 조작 혐의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니 더욱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누런 나뭇잎을 당당히 흔들어 보이면서 환경부라는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니 한 번 더 어이가 없습니다. 하긴 어이가 상실된 ‘순실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설악의 가치가 과연 몇 십억원에 그칠까요? 설령 몇 십억원의 이익이 새롭게 발생한들 그 돈이 과연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갈까요? 이익이 몇 십억원이면 손해는 또 얼마일까요? 그리고 그 손해는 누가 감당해야 할까요? 처절한 호소를 떼쓰는 철부지의 울음 정도로 치부하는 세상에 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입니다.

황금이 아무리 탐나도 거위의 배를 갈라서는 안됩니다. 칼을 대는 순간 거위가 곧바로 고깃덩어리로 전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녹조 가득한 낙동강에서 이미 목격했습니다. 경제활성화와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한다는 약속이 개발업자들이 흔든 누런 나뭇잎이었음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강’밖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설악은 장구한 세월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이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살아 숨쉬는 마지막 공간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40여년 전부터 설악산을 천연기념물 171호, 곧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해 왔습니다.

이런 설악을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산’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설악의 가치는 결코 몇 십억원의 이익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설악은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일부 개발업자들의 배만 불릴 영업장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설악은 우리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하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 줄 공공의 보물입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28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구로서, 사업 자체를 ‘부결’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1982년에도 문화재위원회는 2차례나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부결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자연 중에서 가장 대표가 되는 천연보호구역”이고 “인위적인 시설을 금지하여 자연의 원상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 이 지역 관리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34년이 지난 지금 이 논리가 뒤집혀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요?

설악의 운명이 이제 문화재위원들의 손에 놓였습니다. 그분들마저 귀 막고 눈감는다면 설악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 땅의 자연과 문화의 가치도 위기의 갈림길에 처해 있습니다. 그 가치들이 무너지느냐 마느냐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바로 28일의 문화재위원회 심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문화재위원들께 호소합니다. 부디 ‘옳은’ 판단을 해주십시오. 부디 양심을 지켜주십시오.

장명 | 승려·전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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