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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시설에 관한 한 사고 가능성에 0은 없다. 원전도 예외일 수 없다. 설령 10만년에 1번이라도 일어나는 순간 1이 되는 것이고, 그 순간은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원전안전에 관한 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 미뤄서도 안된다. 사고빈도는 0에 가까울지라도 결말은 무한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는 타지 않으면 되지만 원전은 비켜갈 수도 없다. 싫든 좋든 끌어안고 가야 할 고장과 사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다.

원전고장에 설비 미비와 폐쇄문화에 사기 저하가 겹치면 대형사고가 나는 건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1만명이 잘해도 1명이 그르치면 안전과 신뢰가 모두 무너지는 게 인간사회의 평범한 진실이다. 게다가 정부의 무능과 국민의 불신이 더해지면 국가적, 대륙적 재난이 될 수도 있다. 모름지기 안전당국은 규제다운 규제를 위해 진흥과 사슬에서 철저히 벗어나 있어야 한다. 준사법기관으로서 독립적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

경영부실과 인력 부족으로 90년대 난국에 빠졌던 캐나다가 정상을 되찾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5년마다 원전 운영허가를 심사하는 것이다. 설계시기와 기술수준, 원자로형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에서 운영 중인 원전은 30~40년, 건설 중인 원전은 60년으로 설계됐다. 캐나다 원전은 5년마다 심사하기 때문에 설계수명이 끝나기 전에도 계속운전에 적합한지를 평가받아야 한다.

설계수명이 다 된 원전은 설비개선을 통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종합적인 안전성이다. 덧붙여 의사결정에 앞서 시민단체와 지역주민 등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공청회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시한다. 공청회는 생중계된다. 시민단체나 환경단체, 개인은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공청회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는다. 캐나다의 이런 정책은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한국수력원자력과 사뭇 대조적이다.

한수원은 압력관 교체를 비롯해 설비개선을 앞서 하면서 계속운전 계획이 없는 것처럼 밝혔다. 결국에 한수원은 계속운전을 준비 중이었고, 이와 관련해 손익분기점까지 추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논란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결정에 대한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인트 르프로 원전의 계속운전 승인에 대한 반발이 끊이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규제기관의 결정이 올바른지 장관이나 각료도 검토할 권한은 없으며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연방법원뿐이다.

물론 규제기관의 역할은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지 원전에 대한 반대를 누그러뜨리거나 찬성을 이끌어내는 건 아니다. 아무리 공청회를 하더라도 반대는 언제 어디서나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원전이 있기 때문에 고용창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걸 공감하는 주민도 있을 것이다. 시간제약 때문에 쫓겨서도 안될 것이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환경단체 회원과 월성 원전 인근의 주민들이 12일 서울 세종대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월성 원전 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계속운전은 원자력안전법을 충족하도록 충분한 검토가 수행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우선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은 전면 재심사를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전성 확보가 선결조건이다. 월성 2, 3, 4호기에 설치된 격납용기 수문도, 주증기격리밸브도 설치되지 않은 원전에 대해 적절한 조치 없이 계속운전을 승인하려는 것은 확률을 담보로 안전을 타협하려는 것과 같다.

중장기적 인력 충원도 중요하지만 안전을 진흥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로 맞추는 소신 있는 발상의 전환이 급선무다. 원안위의 실질적인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정부조직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규제인력을 2000명 수준으로 늘리고, 현재 정원도 못 채우는 한수원 직원을 건설 중인 원전 등을 고려해 정원 대비 11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폐쇄적, 독점적으로 운영되는 안전규제를 감시하는 범국민적 기구도 만들어야 한다. 원전 안전엔 여유도, 유보도 없다. 유비무환이 있을 뿐이다.


서균렬 |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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