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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합동으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훌륭한 비전임 박사를 대상으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가칭)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학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학 밖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받는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문사회 학술은 직접적인 이익 창출을 하지 않지만,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이다. 세종 시기에 양성된 학자와 그 학문적 성과에 이어진 문화적 융성과 번영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고 또 과거의 선진국 추격형 국가가 아닌 선도형 국가가 되려면 이 분야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보여준 관계부처에 고마운 마음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더욱 늘어나야 한다. 2019년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20조원을 넘어 다른 선진국보다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연구비 지원은 그것의 1.5%인 30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영국은 국가 연구예산의 9% 이상을 인문사회 분야에 투자하며 미국 또한 7%에 달한다. 이에 비할 때 우리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상당히 빈약한 수준이다. 

둘째, 인문사회 학술에 대한 장기적 정책을 수행하고 그것을 집행할 조직이 필요하다. 학술의 활성화는 단순히 연구지원의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연구 인력이 필요하고, 그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학술정책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의 경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별도 조직을 통해 해당 분야의 연구·개발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지속적 논의가 가능하다. 그간 인문사회 분야는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에 대해 새로운 형식의 연구비를 만드는 미봉책만 제시됐는데, 이는 장기적인 정책과 그것을 수행할 기구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

셋째, 인문사회 학술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 지식세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비전임 박사에 대한 지원의 확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강사법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거나 일종의 취업 기회 확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생계지원 방식의 연구비 확대가 연구자의 증대로 이어지고 다시 그 때문에 연구비의 부족을 호소하고 이에 따라 연구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학술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장기적인 전망으로 건전한 지식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초점이 놓여야 한다.

끝으로 인문사회 분야에 종사하는 기성 학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위기는 학문 후속세대의 위기이며 동시에 대학 전체의 위기다. 그런데도 급변하는 세계에서 교수들이 혹여 밀폐된 연구실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거나 자신만의 세계 구축에 열을 올리는 건 아닌지, 사회적 임무를 잊고 편안한 직업인에 만족하는 건 아닌지 성찰이 절실하다. 이것은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번 활성화 방안에서 대학 밖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 것이 대학만이 학문의 근거지였던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대학 밖에서 더 큰 힘으로 전임교수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강재 | 서울대 교수·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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