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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평가 및 탈락 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학생 선택권 강화와 교육 다양화를 위한다는 설립 취지와는 달리, 자사고가 ‘입시학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교 서열의 최상에 군림하면서 우수 학생들을 빨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정신을 상실했기에 자사고 지위를 박탈당한 것이다. 따라서 자사고의 비교육적 결과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고교교육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자사고 제도는 자녀의 입시 성공을 선점하려는 일부 학부모의 욕구를 수용하여 이를 다양화로 포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 ‘교육의 다양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사고의 특성화 프로그램은 자사고의 견학이념을 구현하지 못했다. 고유하고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지 않아 ‘부유층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한’ 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박건호 교육정책국장(가운데) 등 교육청 관계자들이 관내 자립형사립고(자사고) 13개교에 대한 운영평가 결과와 자사고 지정 취소 관련 청문 대상 학교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둘째, 고교교육이 자사고로 편중됨으로써 일반고를 황폐화시켰다. 자사고가 주변 학군이 좋지 않아 갈 곳이 없어 ‘가야만 하는’, 즉 ‘덜 험한 학생들이 오는 학교’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훈육이 쉬운 학생’들이 모이고, ‘지원해서 선발되었다’는 이유로 자부심, 즉 구별짓기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서울의 경우 지역별 학교선택제의 약점, 자사고 선발방식의 맹점으로 학생들의 대이동이 야기됐다. 자사고 미달 사태가 발생하면, 충원하기 위한 2차 모집도 했다. ‘후기 자사고’ 현상이 일어났다. 지역의 교육 생태계가 파괴됐다. 

셋째, 자사고 평가는 학교에 대한 평가보다는 자사고 정책과 제도에 대한 평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자사고 평가는 공교육 환경에 주는 효과를 고려하여 점검되어야 한다. 초기 자사고들에서 입시위주 교육과정 편성 등이 논란이 되자, 많은 자사고들이 평가에 대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 즉 입시와 연계된 다양한 봉사활동, 자율동아리, 비교과 탐구활동, 학생 간 멘토·멘티 등을 도입한 것은 자사고의 본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이는 자사고의 생존을 위한 소극적 차원의 ‘자사고 살리기’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자사고는 설립 목적과 달리 자립성도 취약하다. 자사고의 재정전입금 평가 기준이 5%에 지나지 않고 연간 100억원이 넘는 돈을 학부모가 부담하는 학교가 되어버렸다. 현재 자사고가 보장받는 자율성과 지원의 대가로 사회적 배려자 전형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사회격차 해소 재원인 사회적 배려자 장학금이 국고에서 지급되는 것은 기회균등의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일반고 3배 이상의 등록금을 저소득층 장학금으로 충당한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대부분의 자사고가 중학교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입학 성적우수자 장학금을 지급한 것도 문제다. 

자사고 제도는 평가 방식의 문제를 넘어 근본적인 교육적 차원에서 검토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자율학교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입시교육을 규제하는 미봉적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곧 비정상적 고교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제 자사고의 폐지는 일반고 살리기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고교체계는 학벌사회 문제, 일류대학 문제, 입시개혁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할 우리 교육의 최대 과제이다. 고교체계 개편을 통해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구현하여 모든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심성보 |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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