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느덧 삼복(三伏)에 들었으니 여름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 방향이 다릅니다. 봄에는 동쪽에서 샛바람, 여름에는 남쪽에서 마파람, 가을에는 서쪽에서 하늬바람, 겨울에는 북쪽에서 된바람이 불어옵니다. 여름 바람 남풍, 마파람은 앞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네마다 앞산을 남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남향집에서 바라보면 앞이 남쪽이고, 경복궁에서도 경주 시내에서도 남산이 보입니다. 그래서 남풍은 앞에서 부는 바람, 마주 부는 바람, 맞바람, 마파람이 됩니다.

급하게 먹어치우거나 행동이 재빠르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고 합니다. 누군가 면전에서 바람을 훅 불거나 무서운 것이 눈앞에 있을 때 저도 모르게 눈 질끈 감습니다. 게 역시 홱 바람이 불거나 위험하다 여기면 세웠던 눈을 빠르게 접습니다. 그런데 재빠르다 하면 보통 ‘눈 깜작할 새’를 써야 할 텐데 왜 ‘게 눈’을 가지고 표현했을까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은 원래 ‘무언가를 빠르게 먹어치우는 모양’을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가만 보면 게의 눈은 숟가락같이 생겼습니다. 눈알은 동그랗고 그 아래 기름한 자루는 가느니까요. 또한 게가 눈 자루를 접었다 펴는 모양은 그릇째 들고 숟가락으로 밥 퍼먹는 동작과 같습니다. 그 동작이 속도로까지 널리 쓰이게 된 것이지요. 손도 숟가락처럼 팔보다 폭이 넓습니다. 숟가락 댈 것도 없이 연신 양손으로 허겁지겁 집어먹는 사람은 쉴 새 없이 개펄 집어먹는 게와 다름없이 보였을 겁니다(숟가락 같은 게의 눈은 덤이고요). 

또다시 바닷바람 여름입니다. 근육량 증가와 칼로리 소비 없이 사둔 수영복만 바라보며 쫄쫄 굶겠지요. 그렇게 매번 게 눈 감추듯 정신없이 비워버린 양푼과 자책의 한숨만 남기면서요. 과학적이지 않은 허겁지겁 다이어트는 자학인데 말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