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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가 일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 모습. 사건 이틀 뒤인 12일 사진기자가 찾아갔을 때 화장실 변기 위에 커피포트와 전자레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권도현 기자

멸시당하거나 위험하거나 고단한 노동은 늘 우리 주위에 있다.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컨베이어 벨트에 머리가 끼여 사망한 삼표시멘트 노동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돌연사한 광주의 택배 노동자. 이런 노동은 늘 있지만, 이 노동자들이 처한 곤경은 또 늘 무시된다. 화장실 변기 바로 위 선반에 전자레인지와 주전자를 두는 노동환경은 우리의 추모식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100층짜리 집이라고 가정하자. 각 층에 인구의 1%를 거주시키되 1층에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을, 층이 높아질수록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식으로 거주시킨다. 9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을 5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부유한 사람이 얼마나 부유한가를, 5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을 1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한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이 두 개의 지표를 계산하면 한국은, 전자는 8위이고 후자는 1위이다. 즉 한국은 OECD 국가 중 부자에게 경제력이 집중된 정도도 높은 편이지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정도는 가장 심하다.

부유한 사람이 매우 부유할 때, 정의 문제가 발생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특별히 더 잘난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부유한가를 우리는 문제 삼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매우 가난할 때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 가난은 멸시와 위험과 고단함이 지나친 반인권적 노동을 거부할 수 없게 한다. 정의보다는 인권, 또는 기본권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사람에게 기본권이 절실한 것은 사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기본권이 필요하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동물도 기본권이 필요하다. 지금 농장 또는 실험실에 2억마리의 동물이 있다. 가난한 사람이 지상 저층민이라면 그 고통의 정도에 의해 이들은 지하층민이다. 이들의 고통이 당연하지 않음을 ‘새벽이(동물권단체가 구조한 아기 돼지)’가 보여준다. 지하층민에게도 기본권은 절실한 문제이다.

동물보호 활동이나 동물해방 운동을 두고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이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월 OECD가 발표한 구매력평가(PPP)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1001달러(2017년 기준, 약 4890만원)를 기록했다. 중위소득 60% 이하 소득자를 빈곤계층으로 본다면 한국 국민의 77%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다. 저층민이 먹고살기 힘든 것은 지하층민을 돕기 때문이 아니라 77%의 사람이 저층과 지하층에 있는 존재의 고통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저층민과 지하층민은 정치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사회구조와 충돌하는 일이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복음).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65%나 되는 상황에서 충돌과 분열을 일으킬 정부·여당은 없다. 그렇다면 저층민과 지하층민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반영되어야 할까? 저층민을 반영하고자 하는 정당은 있다. 지하층민을 반영하고자 하는 정당은 곧 나타날 듯하다. 두 정당은 각각 인권과 동물권이라는 기본권을 정말로 실현하고자 한다. 이들의 헌신을 토대로 정의와 녹색을 비롯한 다양한 진보적 정치관을 가진 세력이 힘을 얻는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에서 이 길이 유일한지, 최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볼 만한 길이다.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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