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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요즘 의사들은 각종 첨단 장비로 병을 진단하고, 수술 등 치료를 한다. 그래서 현대 의학은 전기 없이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진단의 장비 의존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의사들끼리도 “이제 명의(名醫)는 없고, 명장비(名裝備)만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일간지 사회면에 실린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30대 환자를 119구급대원과 병원 의료진이 77분간 8000번의 흉부 압박을 해 살려냈다는 내용이다. 의사들은 심정지가 온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CPR)에서 30분을 ‘심리적 장벽’으로 본다. 그런데 그 장벽을 넘어 계속된 의료진의 집념이 멈춘 심장을 깨우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생명을 구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한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한다.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이 의료계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이 의사를 대체한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은 국내 일부 대학병원에도 이미 도입돼 암 진단 등에 활용되고 있다. 첨단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합리성 또는 정확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만약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 의사가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면 심장발작 환자가 살아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로봇은 30분이 넘으면 바로 심폐소생술을 중단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의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움직임도 시사점을 준다. 의료 기술이 가장 앞섰다는 미국의 의과대학에서 교육 혁신을 논의하면서 ‘전기 없는 곳에서도 진단, 치료하는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도 청진기와 주사기, 메스 등 기본적인 장비와 약만으로 환자를 진단, 치료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현대 의학의 합리성, 효율성에만 매몰된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숨소리, 맥박, 말소리를 듣고 느끼고 공감하면서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미래에 더 필요할 것이라는 미국 의대의 ‘반성문’인 셈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의료의 질을 높이는 데 획기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이런 첨단의학 기술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첨단 기술만이 능사는 아니다. 의료는 의사의 의학적 지식에 현장 상황이 더해져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궁극의 정답이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 데이터로 정량화되기도 어렵다. 의학 발전 계획을 짤 때 이런 의료 특성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의료 특성이란 쉽게 심폐소생술을 포기하지 않는 의료인들의 비합리성, 그리고 ‘전기 없는 곳에서도 진단, 치료하는 의사’를 말한다.

김영구 | 연세스타피부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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