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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애벌레 시절 기린초를 먹고 자란 희귀 나비인 붉은점모시나비.

강이 바닥을 드러내 수심이 깊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물을 퍼붓듯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젠 계류의 범람과 산사태가 걱정이다. 삶에 있어 생명과도 같은 물, 햇살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이렇게 심하게 모자라거나 넘치게 된 것이 모두 자연을 함부로 생각한 우리 탓만 같다. 그래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생기를 되찾은 숲과 한층 싱그러워진 초록빛 사이에서 피어날 동자꽃, 금마타리 같은 꽃들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에서 ‘아름다운 나비’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해 전 경희의료원장이던 주흥재 박사님이 평생 모은, 학술적·경제적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나비 표본 1만1000여점과 자료들을 기증해주셨다. 이를 정리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귀한 나비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비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한 전시회였다.

의사인 주 박사님의 나비 사랑은 참으로 각별했다. 전시된 나비 하나하나에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광릉숲에서 처음 만나 행복했다는 애호랑나비. 코발트 블루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색을 가진 몰포(Morpho)속 나비들. 몰포나비는 영화 <빠삐용>에서 빠삐용의 가슴에 새겨졌던 나비인데, 다른 한 죄수는 이 나비의 날개 조각을 이용해 위조지폐를 만들어 감옥이 갇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프랑스어로 나비·나방을 뜻하는 ‘빠삐용(Papillon)’이 됐다는 대목이 흥미진진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 새인 줄 알고 총으로 쏘아 확인했다는 오르니토프테라(Ornithoptera)속의 어린아이 머리만 한 나비들을 볼 때는 감탄이 절로 일었다.

영화 <빠삐용>에 등장한 몰포나비류 가운데 하나인 메넬라우스 몰포나비.

전시된 나비들을 이야기와 함께 만나면서 아름다운 모양, 아름다운 빛깔의 나비 세상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평생 식물만 최고로 알고 살아온 내겐 신천지였다. 전시회에 함께 오신 사모님은 주 박사님이 나비에 대한 무용담을 쏟아낼 때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의 일부를 나비에게 쏟았다며 섭섭해하여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 박사님이 많은 나비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반복적으로 하신 말은 그날 전시된 많은 나비들을 이 땅에서 만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 토박이인 내게도 어릴 적 봄이 되면 학교 가는 길에 팔랑거리며 나타나던 배추흰나비, 노랑나비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많던 나비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내가 곤충학자는 아니지만 서식지 변화가 대표적인 이유의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기후의 변화도, 숲이 우거져 초지가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주변에 나비가 살 수 있는 공간, 나아가 나비가 먹고살아갈 식물들이 줄어든 탓이 크다 싶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희귀 나비로 복원까지 시도할 만큼 귀한 붉은점모시나비는 애벌레의 먹이식물이 기린초다. 따라서 이 나비가 제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려면 기린초부터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 박사님이 광릉숲에서 처음 보았다는 애호랑나비가 이 숲에 많은 것은 이 나비의 먹이식물인 족도리풀이 많기 때문이다. 호랑나비는 산초나무, 큰수리팔랑나비는 음나무가 있어야 함께 만날 수 있다.

국립수목원은 우리 꽃으로 만든 모델정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학교정원’도 있었다. 흙을 전혀 밟을 수 없는 운동장을 가진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우리 꽃으로 정원을 만들어 모니터링을 한 결과, 콘크리트 바닥의 아파트 숲속에 있던 그 학교의 정원에 어디선가 나비들이 날아들어 우리를 감동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틈틈이 꽃밭을 만들면, 배추를 심은 텃밭이 생겨나면, 산초나무나 음나무가 있는 공원이 생기면 그들을 좋아하는 나비들이 함께 찾아들지 않을까! 나비만 올까? 풀과 나무와 나비와 연결된 다양한 생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지 않을까! 이렇게 다채로운 생태환경이 되면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해충의 대발생도 줄어들지 않을까!

요즈음 서양에서는 ‘폴리네이터 가든(pollinator garden)’, 즉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수분매개자 정원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간이 화려한 꽃을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켜 결실조차 맺을 수 없는 개량꽃 대신 소박하지만 자연스러운 우리 꽃들을 심어 그들을 찾아 날아드는 나비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사람과 식물, 식물과 곤충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등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들을 만드는 일이 진정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작지만 소중한 실천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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