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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얼마 전까지 ‘힐링의 섬’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난개발이 이어지면서 ‘힐링’이라는 표상(表象)은 거의 무너져 버렸다. 유입 인구가 증가하면서 협소한 생활 공간과 부족한 자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제주도는 섬의 고유한 모습을 잃고 서울 같은 대도시의 외관을 답습하고 있다. 일견 발전하는 것처럼 보여도 제 살을 깎아 먹는 일이다.

제주도에 공항을 하나 더 짓는 것이 당장은 하나의 치적이 될지 모른다. 제주도는 항상 미개발의 상태를 감수하고 살아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제주도가 서울처럼 될 수는 없다. 자기의 역량을 알고 고유성을 신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득책(得策)이다. 제주도민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 때,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섬이 될 수 있다. 비자림을 헐어서 공항 가는 도로를 넓히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돌아갈 자원을 빼앗아 쓰는 짓이다. 우리 땅이니까 마음대로 처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기적이다. 곶자왈이 없고 아파트와 테마파크와 공항뿐이라면 누가 제주도까지 오고 싶어 하겠는가. 아마도 보통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굉음만 울리는 곳보다는 먼나무에 앉은 새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는 곳을 더 좋아할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제주 신공항 계획의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다는 의견을 환경부에 제시했다는 사실이 지난달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을 통해 알려졌다. 환경부에서는 이런 의견을 정치적인 이유로 묵살하고 있다. 건설경기가 좋아지면 주머니 사정이 좀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막연하지만, 포클레인에 자연이 훼손되리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신공항 부지가 철새 도래지에 인접해 있고, 조류 보호구역과 겹친다는 것은 항공 안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월호 문제가 한 정권의 존망에 미친 영향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신공항 건설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럼에도 이 갈등과 분노의 국면을 진정시키려는 정치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려된다. 지난달 31일, 제주도의회 운영위가 ‘제2공항 공론화 지원특위 구성안’의 심사를 보류한 것은 시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결정이다.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신공항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두 개의 공항이 역할 분담을 하는 과정에서 조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공항의 군사적 전용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국익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신공항이 미군의 군사공항이 되는 것은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국내외 정치의 지형이 바뀌면 신공항을 군사기지로 쓰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신공항을 짓고 말고는 제주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인(商人)의 작은 ‘이(利)’를 취하기보다는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를 향해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와 항공 소음의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 어떤 의제를 내세우느냐에 따라 제주도는 그 정치적 종속성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위상을 만들 수 있다. 신공항을 전시하기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모델을 만들고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지금 정치의 소임이다.

<장이지 | 시인·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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