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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당신의 세계관

opinionX 2019. 11. 4. 10:21

요즘, 화제성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등장인물들은 만화 속 세상에서 산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여질 ‘스테이지’에 끌어내면 기억을 잃고, 작가가 준 대사를 읊는다. 로맨스 만화라 남주, 여주, 서브남, 엑스트라 등의 역할에 따라 주어진 설정값이 있고 스테이지에서는 그것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스테이지’ 바깥인 ‘섀도’에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을 하면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에 의문을 지닌, 자아를 가진 캐릭터들이 있다.

이들은 밥맛 없는 녀석을 짝사랑해야 하는 역할에 진저리를 치기도 하고, 곧 죽어야 하는 운명에 거스를 방법은 없는지 궁리를 하기도 한다. 작가가 시키는 대로 ‘스테이지’에 올라 연기를 하면서 ‘섀도’에선 반전을 꿈꾼다. 자아가 있는 녀석들은 자아가 없어 아무런 고민이 없는 녀석들을 측은해하기도 하지만 부러워하기도 한다. 아직 전개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자아를 찾은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의도를 거스를 수 있을지 ‘약간’ 궁금하다.

만화, 혹은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혹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궁금증을 가질 만큼 자아를 각성하지도 않은 상태일까? 인터넷이나 참고할 문헌들을 동원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을 즉석에서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137억년 전의 빅뱅에서 출발해서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한 구석에 자리한 우리 은하의 변두리에 있는 태양계의 3번째 행성, 지구. 지구의 역사는 45억년 정도 되는데 35억년 전에 시작된 생명이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진화하면서 다양한 생물들이 지구상에 번성했고 그 갈래에서 인간도 등장했다.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이제는 원자와 전자, 그리고 아원자 구조까지도 알고 그 힘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이런 지식과 힘에 기반해서 세운 인류의 문명은 지구 생태계, 대기 조성, 그리고 기후에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쳐서 인류 스스로 살기 어려운 상황으로 지구 환경이 급속히 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존재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정체를 밝히지 못한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소로 이루어진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의 4%에 못 미친다고 한다. 나는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중세의 어느 지식인이 살던 세계를 내 마음대로 그려본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회전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까지는 지상계이고 그 위는 신의 영광을 표현하는, 완벽한 천상계이다. 지상계를 이루는 물질들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고, 네 가지 성분의 비율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정해진다. 불이나 공기와 같은 성분이 많은 물질은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경계면으로 올라가려고 하고 흙이나 물같이 무거운 성분이 많은 물질들은 우주의 중심인 지구 중심 쪽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천상계에서 움직이는 해나 별은 완전한 운동인 원운동만 하고, 우리 눈에 그들의 운동이 원운동을 벗어나 보이는 것은 원운동이 겹쳐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물론, 생명의 시작과 번성의 이유는 신에게서 찾았을 것이다. 이렇게 믿고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 주위를 돈다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구조와 움직임, 그리고 그 존재 이유까지 모두 바꿔야 하는 일이니,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배워, 말로는 뜻과 의미를 짐작은 하지만, 나도 아직, 137억년과 같은 긴 시간을 이해하는 것은 버겁다. 그 시간이 가져온 생명의 다양성도 100년 남짓의 시간에 길이 갇힌 인간이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위대한 영혼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해주기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과학이 지식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에 대한 진실에 미치진 못하고, 과학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것도 많으니, 사람의 숫자만큼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세상이 다르니,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목표를 세워 함께 이뤄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짐작이 된다. 과학이, 혹은 학문이, 우리가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공통의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공유하는 세계를 넓히는 작업이다. 그리고, 공유하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할 바탕도 든든해질 것이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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