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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조항에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올해 말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같은 해 11월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이보다 진일보했다. 대법원 판결은 병역거부 처벌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재와 대법원의 잇단 선고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반사회적 대상으로 처벌하는 대신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면서도 국민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 대체입법 시한(12월31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날을 넘기면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병역법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병역 판정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법적 공백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연말까지는 아직 두 달 남았지만 시행령 개정과 관련 심사위 구성, 대체복무자를 위한 시설 마련 등 후속조치 기간을 감안하면 법률안은 10월까지는 마련됐어야 한다고 한다. 그도 이미 지났다. 이러다간 정말 징병 자체가 일시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국회에 올라온 법률안은 정부안을 포함해 10건이나 된다. 그만큼 대체복무 기간이나 복무 방식, 내용을 놓고 견해차가 크다는 뜻이다. 국방부가 내놓은 정부안은 ‘36개월간 교정시설 합숙근무’가 골자다. 하지만 인권단체 등에서는 육군 현역병 근무기간(18개월)의 1.5배가 넘는 복무기간은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런 의견을 수용해 27개월 복무에 중증장애인이나 치매노인을 보살피는 업무를 하도록 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의 안은 복무기간이 36개월부터 60개월까지 더 길고, 복무내용도 지뢰 제거 등 위험한 업무가 우선이다. 이렇게 제각각이니 남은 빠듯한 기간 내에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헌재가 대체입법을 주문한 지 1년도 넘었다. 하지만 국회는 그간 제대로 논의 한번 하지 않은 채 귀중한 시간만 다 까먹었다.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국회를 탓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병역은 안보와 직결되면서 청년들 삶의 계획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대로 해를 넘긴다면 병역의 국가적 대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국회는 날을 새워서라도 시대변화에 걸맞은 병역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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