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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 이상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어마’는 대서양에서 관측된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기록되었다. 바부다를 시작으로 쿠바를 거쳐 카리브해의 섬들에 터치다운하면서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생마틴섬 전체 건물의 95%에 피해를 입힌 어마의 위력을 목도한 미국 플로리다는 재빠르게 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피령을 내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급 허리케인으로 상륙해 한 장소에 최고 1000㎜가 넘는 비를 뿌린 ‘하비’가 텍사스주 휴스턴을 강타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5급 허리케인이다. 9월6일부터 8일까지는 어마를 기준으로 서쪽의 ‘카티아’와 동쪽의 ‘호세’까지, 3개의 허리케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희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뿐 아니다. 허리케인 하비가 휴스턴을 강타하고 있을 때 남아시아에서는 몬순의 호우가 비정상적으로 쏟아져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에서 1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렇듯 이곳저곳 예기치 않게 출몰하는 자연재해를 두고 누군가 말했다. “지구가 무섭다.”

AP연합뉴스

허리케인, 태풍, 사이클론 등으로 불리는 열대성 저기압은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적도에서 고위도 지방으로 한꺼번에 많은 열을 이동시키는 대기의 움직임으로, 지구 시스템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하나이다. 그러나 연례적으로 발생하는 기상현상이 재앙으로 발달한 까닭을 추적하면 지구가 아닌 인간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3년에 걸쳐, 지구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기록된 연평균 최고기온을 매년 갈아치웠다.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2016년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는 1981~2010년의 30년 평균치에 비해 0.45~0.56도 높았다. 엘니뇨의 영향이 수그러질 것이라던 올해에도 지구 곳곳에서 일간 최고기온의 경신이 잇따랐다. 대서양과 멕시코만 해역의 이례적으로 따뜻한 바닷물이 허리케인의 강력한 에너지 원천이 되는 다량의 열과 수분을 공급했다. 해수면 상승도 피해를 키웠다. 허리케인 하비에 의해 최소 230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는 텍사스주 갤버스톤의 경우 1년에 6.6㎜ 이상 해수면이 올라차고 있다.

이러한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화석연료의 연소로부터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목된다. 그러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현상이 사회적 재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그저 온실가스의 증가로 설명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재해의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증대시키는 주요한 요인은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에 대비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다. 허리케인 하비를 재앙으로 만든 것은 갤버스톤을 비롯해 홍수 시 범람하는 저지대에 무분별하게 건축허가를 내 준 휴스턴시의 난개발, 지난 수십년간 크고 작은 침수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지 않은 허술한 재난경보체계 등 구조적 문제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인천, 마산, 부산 등지에서 이미 ‘마른 침수(sunny day flooding)’가 관찰된다. 마른 침수란 비가 오지 않아도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사리 기간 만조에 의해 바닷물이 내륙까지 들어오는 상습 침수 현상을 뜻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마른 침수를 겪는 날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은 자명하다. 조차가 큰 시기에 태풍이 발생하면 재해의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미 높아진 해수면에 집중호우가 겹치면 물은 갈 곳을 잃고 차곡차곡 쌓인다. 2016년 태풍 ‘차바’가 부산에 상륙했을 당시 바닷물이 방파제를 가뿐히 넘어 주거지구로 밀려들던 장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앞으로는 더욱 자주 목도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허리케인 어마로 강제대피령이 내려진 마이애미의 연안 지역은 매립으로 만들어진 인공섬들이 산재하며 과도하고 집약적인 개발이 이루어져 재해에 특별히 취약하다. 간척과 매립으로 상당한 자연해안이 완충지대 없는 인공해안선으로 대체되었을 뿐 아니라 바닷가에 바짝 닿은 수변도시 개발 계획이 도리어 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의 연안은 해수면 상승과 보다 강도 높고 빈번해질 연안 재해에 얼마나 대비되어 있는가. 혹은 다가올 재해의 규모를 도리어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상 무서운 존재는 지구가 아니라 경제적 수익만을 추구하고 제도적 태만을 방치하는 사회일지 모른다. 자명한 미래를 간과하면 자연재해는 인재가 될 수밖에 없다.

<최영래 |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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