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8월25일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가 시작되었고, 공사 재개에 대한 찬반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경제성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정당화에 동원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그러나 경제성은 안전성을 전제로 한다. 생명을 잃는다면 돈이 소용없듯이, 안전성이 없으면 경제성도 의미가 없다. 한데 찬반 양측은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에 대해 입장이 정반대다. 공사 찬성 측은 한국형 3세대 원자로 APR1400을 채택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막아줄 콘크리트 격납건물은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디며 손상 확률은 100만년에 1번 미만이라고 주장한다. 공사 중단 측은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원전의 중대 사고는 여전히 발생 가능하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듯이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8월 28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입구에서 서생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현장 방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주장을 따라야 할까? 먼저, 원전 사고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예측에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의 실태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올해 초, 영광의 한빛 1·2호기, 울진의 한울 1호기, 고리 3호기의 격납건물 내벽철판에서 부식이 발견되더니, 한빛 4호기에선 무려 120여곳에서 부식이 발견되었다. 철판 두께가 60%나 줄어든 곳도 있었다. 또한 격납건물 콘크리트 외벽 58곳을 조사했더니, 57곳에서 깊이 18.7㎝, 높이 1~21㎝의 구멍이 확인되었다. 두께 6㎜의 철판과 120㎝의 콘크리트로 만든 격납건물, 보잉 707 항공기가 날아와 충돌해도 끄떡없고, 사고가 나도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막아준다던 최후의 방호벽에 녹이 슬고 구멍이 뚫린 것이다.

하지만 부실의 끝은 여기가 아니었다. 이번엔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에서 길이 110㎜, 폭 40㎜의 망치형 금속물질과 길이 10.5㎜, 폭 7㎜의 계란형 금속물질 등 이물질 4개가 발견되었다. 이 쇳덩어리들은 20년간 증기발생기 속 두께 1㎜의 수많은 세관들과 충돌하며 세관에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세관의 파손은 방사성물질의 누출로 이어지는 중대 사고의 원인이다. 이 같은 원전의 현실 앞에서,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주장은 민망할 뿐이다.

원전의 안전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은폐와 조작으로 점철된 한수원의 원전 운영 행태다. 2012년 고리 1호기 전원소실 은폐, 2013년 신월성 1·2호기와 신고리 1·2·3·4호기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 자료 위조, 같은 해 한빛 2호기 증기발생기의 정비서류 조작, 2014년 신고리 1호기 재가동 전 냉각수 누출 사고 은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수원은 이번 한빛 4호기의 금속 이물질도 JTBC의 보도 후에야 시인했다. 한수원의 파행적 운영은 원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만하고 느슨한 감독과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을 호언장담하던 원자력 전문가들은 한빛 4호기의 실태에 대해선 침묵한다. 콘크리트 방호벽 내부의 철판부식, 외벽의 구멍, 금속 이물질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과 상관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해도, 이것들 모두 원전의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사고가 난다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없애지는 않는다.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탈원전 주장을 반박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자동차와 비행기가 대도시를 오가듯,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에도 원전을 짓고 가동해야 맞다. 냉각수야 바다 대신 한강, 금강, 낙동강에서 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원전 사고는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와 전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원전의 현실은 원전에서 안전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원전 말고 안전!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하고 상식적인 가르침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