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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공청회를 열어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기에 대한 찬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한자 병기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한 사실이 4월27일자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24일 ‘2015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하면서,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학교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라고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초등 교과서에 한자 병기가 불필요하다고 보는 한글 관련 단체들은 성명서와 건의서를 발표하였다. 초등 교과서에서 한자는 1970년 박정희 정부에서 폐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초등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제 나라말과 제 나라글로 학습 내용을 읽고 쓰고 듣고 말하도록 함이 국어정책의 핵심이다. 교육부는 이 정책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문자생활을 한글로만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기에, 중국글자인 한자를 교과서에 병기할 필요가 없다.

교육부의 시대역행적 교육 방침에 맞서 초등교사들도 여론조사를 통해 교과서의 한자 병기에 반대했다. 시와 도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들도 여기에 대해 반대하였다. 다음의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 교육부에 지적하고자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교과서의 한자 병기 주장이 상위법인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어와 한글의 소중함을 인식한 국회의원들이 합의해 2005년에 ‘국어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은 한글 전용법을 진전시킨 법률이다. 국어기본법 제3조 제1호의 규정(‘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과 제2호의 규정(‘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과 제14조 제1항의 규정(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을 주목해야 한다.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은 현재 교과서 기술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 규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교과서는 한글로 기술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질의에 교육부 관료가 답변하기가 궁색하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교과서의 한자 병기를 추진하기에 앞서, 이 규정을 먼저 살펴보았어야 했다. 교육부가 ‘국어기본법’을 지키지 않는 오명을 듣지 않기를 바란다. 오명을 듣지 않는 첩경은 초등 교과서의 한자 병기 검토를 철회하는 데에 있다. 교육부가 ‘국어기본법’을 지키는 모범을 계속 보여주기 바란다. 사마천은 “정치를 가장 못하는 자는 백성과 싸우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국민과 맞서는 교육부가 되지 말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교육부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박용규 |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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