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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갑자기 사퇴했다. 교수에 대한 막말이 직접 원인이었지만 대학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사건이다. 8년 전 재벌기업이 인수, 한국 대학 개혁을 가장 앞장서 추진한다고 잘 알려져 왔다. 대학이 기업과 다를 바 없다는 취임 공언 후 기업식 구조조정을 감행해 왔다. 여러 대학이 선례로 따르고 있다.

선진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은 대부호들이 평생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취지로 설립, 운영한다. 재단은 뒤에서 후원만 하고 대학은 철저히 총장과 교수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부자들이 설립 또는 인수한 사립대학들은 이사장이 마치 산하 회사처럼 기업식으로 운영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구조조정은 물론 학사 운영, 심지어 교수 인사권까지 행사하기도 한다. ‘내 것 내 마음대로’의 땅콩 갑질에 다름 아니다. 한국 교육에서 중요 비중을 차지하는 사립학교는 개인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적 기구라는 점이 간과된다.

일부 언론이나 재계에서 이번 일로 개혁이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이 개혁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가 문제다. 대학교수들이 그동안 전공 이기주의에 빠져 세상 변화와 무관하게 지냈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기업은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한 명령복종 체계를 갖는데, 대학은 다양한 의견 즉, 반대의견도 얼마든지 제시하는 큰 틀에서 통합되는 다양성 사회이다. 권력자 진시황이 자기 방침에 순종하지 않는 학자들을 땅에 파묻고 책을 불사른 분서갱유의 역사 선례가 있다.

우리는 지금 ‘돈’을 가장 중심에 두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과 대학은 설립 근본 목적이 다르다. 기업은 돈 버는 것이 목적이고,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다. 대학은 자본과는 다른, 인간의 존엄성, 인류의 복지 같은 무형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다. 대학은 이익을 내는 기구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이 돈을 낭비하는 구조라면 당연히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학생 인구 감소에 따라 백화점식 학과 편성은 고쳐야겠지만, 현재의 취업률이나 인기에 연연하여 구조조정해서는 안될 일이다. 대학이 취업학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대학에서 재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비를 낭비하고 빼돌리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기업과 대학 간에 시간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기업은 고작 1, 2년의 단기성과를 내야 하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 최소한 학생들이 나가서 활동할 20년을 본다. 과거 잘나가던 여러 전공이 지금에는 사양산업이 되듯 지금의 우수 기업이 30년 후에도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업은 눈앞의 수요에 따라 조직을 수시로 없앴다가 새로 만들 수 있지만, 대학은 한 번 개편한 조직을 또다시 쉽게 바꿀 수 없다. 최소한 학생의 입학-휴학-졸업의 8년간은 같은 제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재계는 당장 써먹을 인재를 요구하지만 대학은 근본 원리와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다. 순수학문은 응용학문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당장 급하다면 재계에서 산하 기업 취업용 소규모 기능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말리지는 않는다. 종합대학을 그리해서는 안된다.

중앙대 교수협의회와 교수대표 비대위 소속 교수들이 22일 중앙대 교수회관에서 이사장 사퇴 등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교수들은 박 전 이사장을 모욕죄와 협박죄로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출처 : 경향DB)


주어진 지표를 잘 따라 가시적 성과를 올리는 것이 개혁은 아니다. 대학 정책을 주관하는 교육부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 일례로 학부제는 십수년 전 안 따르면 큰일 날 듯 윽박질러 모든 대학이 따랐으나 지금은 폐기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학생을 비롯해 대학에 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 인위적으로 설정한 대학 평가지표에 문제가 많다. 평가 점수에 올인하여 외형적 순위는 올릴 수 있겠지만 대학이 좋아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근본적으로 대학은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돈 중심, 돈이 지배하는 대학은 천민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사례이며, 한국의 장래를 망칠 뿐이다.


이희봉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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