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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력회사 PG&E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불거진 안전성 논란 끝에 2016년 6월 캘리포니아주의 마지막 원전인 ‘디아블로 캐니언’(이하 디아블로) 1·2호기의 애초 계획된 20년 수명연장을 포기하고 2025년 폐쇄를 결정했다. 

또한 원전의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례는 국내 공론화 방식과 차이가 있으나, 현재 국내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에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 지진과 원전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다. 사실 디아블로는 지진으로 인한 건물 충격의 지표인 지반가속도 0.75g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정되어, 세계 최고의 내진설계를 자랑하던 원전이다. 이는 신고리 5·6호기 내진설계(0.3g)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건설비용도 현재 가치로 14조6000억원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비(8조6000억원)의 두 배 가깝게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캘리포니아 시민사회에는 디아블로 주변에서 단층대들이 발견된 만큼 지진으로 인한 사고 위험과 해양환경 피해를 완벽히 방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우려는 원전 폐쇄 결정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둘째로 전력회사의 전향적인 자세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들 수 있다. 디아블로의 안전성 논란이 수년째 지속되자 PG&E사는 환경단체, 노조, 지역 주민을 동등한 파트너로 초청해 수명연장 여부에 대해 공동의 결정을 했다. 

논의 결과도 원전 폐쇄를 넘어 향후 에너지 대안 수립 방식, 노조와 주민들에 대한 보상 방식을 포괄하는 등 이른바 ‘질서 있는 폐지(orderly phase-out)’가 강조된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줬다.

셋째, 명망가와 대학교수들은 공론화 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최근 청와대에 원전 추진 요구서한을 보낸 미국 환경단체 ‘환경진보’와 30여명의 대학교수들은 디아블로 사례에서도 지난해 1월 PG&E사, 캘리포니아 주정부 등에 디아블로 수명연장 요구서한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어느 기관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해당사자인 PG&E사와 노조조차 원전 폐쇄 방안에 합의했다. 국내 원자력계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 ‘미국 환경단체’는 정작 미국의 원전 공론화 과정에서 아무런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과거 압축 경제성장을 하면서 대형 건설사업의 의사결정권을 정부, 국책연구소, 소수 대학교수들에게 부여해왔고 이를 당연시해왔다. 최근 국내 원자력 전공교수들이 신고리 공론화 방침에 대해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원전 추진 여부를 결정해선 안된다”는 성명을 낸 것도 이런 결정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지난 정권에서 천문학적 예산이 낭비된 ‘4대강’ ‘아라뱃길’ 사업 등을 국책연구소들조차 연구용역 발주자의 입맛에 따라 숫자까지 바꿔가며 합리화시켜준 사례들을 목도했다. 국민들에게 전문가랍시고 ‘호통’치는 원자력과 교수들은 신뢰할 만한 집단이라기보다는 업계의 ‘용역일꾼들’로 비칠 수밖에 없다.

원자력계가 공론화로 인한 공사 일시 중단조차 예산 낭비라고 공격하면서 3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공론화 기간이 설정되었다. 

그러나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사업에서 진정한 주인은 납세자인 만큼 그 어떤 이해당사자도 원전 공론화 자체를 거부할 명분을 갖지 못한다.

원자력계는 공론화 ‘흔들기’를 자제하고 공론조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일 것이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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