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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천동 탈북모자가 지난 7월31일 통장 잔액 0원인 채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먹먹해졌던 까닭은 그 죽음이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아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일할 수 없었던 엄마 한모씨가 0원만 남은 통장을 들고 먹을 것이 없는 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그 막막함과 외로움을 상상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한씨는 이혼한 사실과 가난을 입증하지 못해 복지의 날카로운 그물망 코에 걸린 채 좌절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어찌 한씨 모자뿐이랴. 성북구의 네 모녀도 그렇게 죽었고 문재인케어의 그늘에서 오늘도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넘쳐난다.

하지만 탈북민에 대해 유독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가난에 더해 국가가 그간 탈북민들에게 행한 ‘배제적 통합’ 때문이다. 사회철학자인 선우현 교수는 남한 내 ‘특정’ 집권 세력 등이 자신들의 전략적, 전술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상황에 따라 탈북민 집단을 배제 또는 통합의 대상으로 규정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남한 사회의 주민들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대우하거나 아니면 배제 내지 제외해 버림으로써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박탈해버리는 일종의 정치적 책략을 ‘배제적 통합’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선우 교수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탈북민 취업 연구자로서 그간 통일부가 탈북민의 가장 절박한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왔음을 덧붙여 제기한다. 바로 일할 권리다. 지난 20년간 탈북민정책에서 일자리 문제와 직업능력 개발은 정책순위에서 항상 맨 뒷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먼저 온 통일’이라고 화려하게 호명되는 무대 뒤편에서 탈북민은 시민사회와 격리된 채 통일역군으로 살아가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국 통일플러스센터로의 하나센터 통합이라는 큰 그림만 남고, 하나센터의 탈북민 취업지원 활동이나 직업능력 개발 같은 탈북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활동은 빈껍데기가 된 지 오래다. 이것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에 한씨 모자 죽음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역설적 비극은 일부 탈북단체들의 행태이다. 한씨 모자의 사망 이후 지난 정부에서 북한 인권 등 반북 정치활동, 심지어는 반세월호 시위, 국정원 댓글 활동, 문재인 후보 당선 시 3000명 망명선언 등을 주도해온 바로 그 단체들의 대표들이 장례식 협상 당사자로 나서, 합의조건의 하나로 자기 단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지난 10월28일 탈북민 비상대책위와 남북하나재단 간에 서명한 합의서를 보면 제2항에 전국적인 탈북민 협력망의 활성화와 탈북민 단체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예산을 확보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행히 이 합의가 결렬됐기에 망정이지 자칫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를 도모해야 할 통일부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반북활동을 지원하는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이는 과거 국정원식 공작정치에 탈북민 단체들을 활용해오던 ‘분단 정치’의 후과라 아니할 수 없다. 

탈북 모자 사망사건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통일부의 역주행이다. 지난 10월16일 통일부는 재발 방지대책으로 탈북민 입국 후 5년의 보호기간을 10년까지 늘리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연철 장관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보호이며 탈북민은 언제까지 탈북민인가? 10년이 지난 후에 11년차가 되면 국가가 탈북민들을 보호하지 않아도 될까? 이제 국가는 ‘먼저 온 통일’이라는 주문을 그만 외우고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도록 허용해야 한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통일부는 지자체에 예산과 실질적 권한을 넘겨 탈북민에게 한국의 시민과 동일한 취업 지원과 복지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그간 특별한 보호가 낳은 특별한 배제를 종식하는 길이다. 

통일부와 경찰과 산하기관이 보호라는 명분으로 탈북민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탈북민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에 더 이상 장애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김화순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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