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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은 영광대로 잡음은 잡음대로 많던 ‘미슐랭의 별’이 이번에도 스캔들을 터뜨렸다. 올해의 스캔들은 미슐랭 가이드북이 자랑해오던 평가 원칙 때문이었다. 미슐랭 측은 암행 평가단이 드러나지 않게 식당을 방문해 별점을 매겨왔다 했지만, 한국에서 처음부터 미슐랭 가이드북에 관여하는 컨설턴트들이 붙어 수수료를 받고 별 3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줬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2016년 처음 발행된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에 당시 한국관광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에서 20억원을 미슐랭 가이드북에 지원해 논란이 있었다. 처음부터 암행의 과정이 아니라 한식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20억원도 미슐랭 가이드북 측이 요구한 ‘보안유지’를 핑계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슐랭 가이드북은 그간 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열지도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었다가 출판물을 수거하는 일이 있었고 방문도 하지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기도 했다. 이번 일도 ‘2020 미슐랭 스캔들 한국 편’ 정도로 여기면 그뿐일지 모른다. 어차피 ‘미슐랭 스리스타’ 식당에 가볼 일도 없다. 

때마침 지난 8월에는 ‘한식진흥법’도 만들어졌다.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의 말을 인용하면 한식진흥법의 골자는 이렇다. 한식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식문화의 해외 확산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농식품부 산하의 한식진흥원은 특수법인으로 전환되고 그에 걸맞게 조직 확장과 예산 투입을 한다는 것이다. 한식진흥원의 사업 중 대표적인 일이 해외 우수 한식당 인증제도 추진 같은 업무다. 해외 한식당들이 인기가 높아지면 한식의 우수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동시에 한국 식자재 수요가 늘어 국내 농수축산물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방탄소년단(BTS)처럼 한식도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작년에도 ‘2018 해외 우수 한식당 인증제 시범 사업’을 수행했고, 중국 베이징·칭다오·상하이의 총 9개 한식당이 시범 인증을 받았다. 인증 신청 자격 요건을 보면 ‘업체 대표 메뉴가 한식이고 판매 메뉴의 50% 이상이 한식인 식당’이다. 여기에 한국산 식재료를 원산지로 표시한 식당이라고 명시하였는데 한식이란 무엇인가? 

짜장면은 한식인가 아닌가. 수입 햄과 치즈, 중국산 김치를 넣고 끓인 부대찌개는 한식인가 아닌가. 미슐랭의 별 3개를 받은 한식당들은 모두 한정식을 내는 식당들이고 미슐랭은 한정식을 한식의 정수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시민들이 한정식을 먹을 일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일상은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하나 추가해 먹는 일일 뿐이다. 한국에서 먹는 음식도 국내산이 아닌 것들이 더 많아졌다. 6000원짜리 백반에 ‘순수 국내산’을 기대하지도 않는 세상이건만 해외 한식당에서 한국산 식재료 사용이 과연 가능할까. 한식 정체성의 핵심이 밥이라지만 미국 코리아타운 한식당에서 내는 공깃밥은 ‘장미쌀’이라 부르는 캘리포니아 쌀이다. 처음부터 해외 한식당의 한식은 정부의 의도대로 재현될 수 없다.

해외 한식당에 한국 정부 인증마크가 붙는다 해서 한식 위상이 높아질 리 없다. 공무를 빙자해 해외 한식당 탐방을 한다며 세금으로 해외나 들락대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이 땅에서 쌀농사 짓고 그 쌀로 밥을 지어먹는 이들의 밥상에 반찬 한 가지라도 ‘진흥’되면 좋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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