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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민주주의는 대화 속에서 꽃피었고, 대화의 소멸과 함께 시들었다. 대화와 소통이, 그리고 말 잘하는 법을 배우려는 의욕이 고대 그리스만큼 넘쳤던 시대는 많지 않다. 그들은 대표를 뽑을 때, 죄지은 사람을 법정에 세울 때, 페르시아 전쟁과 같은 국난이 닥쳤을 때, 참주가 될 위험한 인물을 가려 추방할 때 말로 설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수사학(rhetoric)은 필수교양이었다.

로마시대 키케로도 말(연설)로 일어섰다. 그의 웅변 실력에 감탄한 그리스인 스승은 “지금껏 그리스가 자랑했던 학문과 웅변도 이제는 로마에 빼앗기게 되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BC 63년 집정관(콘술)에 올랐다. 명문 귀족도 아니고, 금전이나 무력으로 이룬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대단한 성취였다. 그러나 재치 있는 말이 인정받았던 만큼 날카로운 말은 잦은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몰락도 직설적인 공격 때문이었다. ‘잘 말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오성(悟性)을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마음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수사(rhetoric)는 ‘입에 발린 말’ 정도로 의미가 축소·퇴색됐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수사학을 7가지 필수교양 중 하나로 채택해 중세시대까지 가르쳤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처럼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날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두고 가족 간 의견이 갈리면서 명절을 망치고 있다고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39%의 시민이 ‘가족갈등이 생겼다’고 답했다. ‘아예 연을 끊었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추수감사절을 평온하게 보내기 위한 콘텐츠들도 쏟아졌다. 미국 심리학회는 추수감사절 정치 대화법으로 ‘가족이 공감할 추억 등을 이야기하라’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라’ ‘적절한 때 중단하라’ 등의 조언을 내놓았다. 정치적 견해차로 가족끼리 곧잘 다투는 한국의 명절 풍경을 연상시킨다. 칼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가시 돋친 말은 영혼에 상처를 낸다. 정치적 노선보다 가족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가정은 ‘불타오르는 전투의욕’보다, 싸움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한 보금자리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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