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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낮기온이 40도를 육박하면서 111년 만에 기상관측 역사를 새로 썼다. 

폭염은 흔히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2016년에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2125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에도 157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1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한여름 무더위가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나 요즘 같은 폭염에는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 기능이 약해져서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더욱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은 태풍이나 추위보다 무서운 것이 폭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요즘같이 폭염이 이어지는 날이 계속되면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바빠질 수밖에 없다.

[장도리]2018년 8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하루에도 두어 번씩 폭염경보 문자메시지가 연일 울려대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폭염경보 문자가 오면 ‘폭염 떴다!(폭염경보가 발령됐다)’라고 해서 일제히 비상이 걸린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화로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폭염주의사항을 전달한다. 그나마 전화로 안전이 확인되면 다행이다. 수소문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는 직접 가정방문을 해서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독거노인가정을 일일이 방문을 하다보면 온몸이 금방 땀으로 흠뻑 젖고 만다. 나이가 젊은 20대의 사회복지사들도 폭염에는 장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회복지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연락이 닿지 않는 독거노인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밀려오는 불안감이 무더위보다 더 크다고 하니 한여름 사회복지사들의 일상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독거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사회복지사들의 당연한 직업적 사명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도 폭염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바깥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나 독거노인생활관리사들은 40~50대 여성종사자가 많다. 서비스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을 뿐 폭염 앞에서는 모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약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에서 서비스를 전달하는 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여름만 되면 뉴스에서 용광로에서 일하는 제철소 근로자들이나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처럼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모르고 지나칠 뻔한 사람들의 노고를 되새길 수도 있겠다. 소방관들의 고생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폭염에 고생하는 또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줘야 한다. 건설현장 노동자, 집배원이나 택배기사, 에어컨 수리기사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들도 있다. 그들에게 한여름 폭염의 열기는 용광로와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무더위 휴식시간제’라는 제도를 통해 실외 노동자들의 휴식을 권고하고는 있지만, 의무가 아닐뿐더러 폭염경보가 뜨면 오히려 더 바빠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휴식하라는 제도가 무슨 소용일까 싶다.

엊그제 뉴스에서 한 아파트 주민들이 무더위에 고생하는 택배기사들을 위해 아이스박스에 얼음물과 음료수를 넣어 비치해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민들의 작은 관심 덕분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한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택배기사나 또 사회복지사들처럼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이 바로 존재하지만 근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투명인간들이다. 올여름 폭염만큼은 정부에서도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적극 대응에 나선다고 한다. 사태수습과 정책수립도 물론 중요하고 이들을 위한 처우개선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투명인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닐까 싶다. 택배기사를 위해 아이스박스를 내놓은 아파트 주민들의 작은 배려처럼 사회적 관심의 시작은 얼음물 한 사발이면 충분하다.

<송장희 | 제주스마트복지관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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