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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객실 청소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이후 원청의 무분별한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계열사 직원은 물론 본사 사무직 직원까지 동원해 청소업무에 나섰고, 하청업체인 ‘이케이맨파워’는 불법 대체인력 투입으로 고발당하자 현재 투입 중인 인력을 원청 소속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은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체행동권은 그야말로 노동3권 중에 가장 중심인 권리이다. 단체행동을 전제하지 않은 단체 결성이나 단체교섭은 무력한 것이어서, 이들만으로는 노사관계의 실질적 평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3조에서 쟁의권을 보장하고, 일부 필수공익사업장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가장 필요한데도 오히려 가장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는 권리가 바로 단체행동권이다. 원청이 손쉽게 원청 노동자를 투입하거나 다른 협력업체로 돌려막기를 하거나 신규채용을 하는 등으로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C&M 등 대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인 정부세종청사, 코레일 역시 간접고용 노동자 파업에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청업체 파업에 이처럼 원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과거 간접고용 시 대체인력 투입을 제한하는 기존의 해석(1988. 노사32281-19968)을 뒤집고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므로 대체인력 투입금지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행정해석(1998. 협력68140-226)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노조법상 ‘사용자’의 개념은 반드시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도 “원청회사가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2007두8881)”고 판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용역업체에서 투입인원의 결정, 업무내용과 근무시간, 인건비 등이 원청에 의해 결정되는 데다가 독자적인 노력에 의한 이윤창출과 위험부담도 없는 점을 고려해보면, 원청 역시 노조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청이 하청업체 파업으로 인해 업무가 실질적으로 중단되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사용자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단 실질적인 지배력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어떤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그 ‘노동’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헌법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헌법상 권리가 박탈되는 현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률로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다행히도 꾸준한 문제제기로 인해 20대 국회에는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원상회복하는 것, 사용자가 실질적 이익은 누리면서 의무는 부담하지 않으려는 유인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우지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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