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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불평등을 용인한다면 경제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뿐 아니라 비교적 보수적인 정책 기조를 견지해 오던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최근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포용적 성장전략으로의 선회는 개별 국가의 경제정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은 없던 최저임금제도를 새로 도입하였으며, 미국이나 일본, 중국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가 이들 국가의 경제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극심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가구소득 증대로 소비도 진작시켜 장기적으로는 고용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선순환 경제의 출발점에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또 다른 의의는 이것이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정책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노동자는 남성 평균 임금의 64%를 받는다. OECD 국가들 중에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극심하다. 2017년 기준으로, 남성노동자는 대략 10명 중 1명, 여성노동자는 5명 중 1명이 법정 최저임금액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전체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이것이 잘 지켜진다면 저임금 시장에서 허덕이던 여성노동자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찾아오는 여성 구직자가 늘어나고, 일을 하고 있는 여성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현장 활동가로부터 전해 들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최저임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 바퀴를 돌아서 의도한바 결실을 맺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을 준비해 놓고 있다. 이밖에도 정부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에 대응하여 크고 작은 정책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먼저,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사례들이 있다. 해당 노동자들로서는 억울한 감이 있겠으나, 감수하자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애초에 최저임금을 올리는 정책의 취지엔 장시간 노동을 줄이자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계약서상의 근로시간은 줄이고 실제로는 더 긴 시간 일을 하게 한다든가 하는 꼼수는 허용할 수 없다. 초과근로에 대한 임금은 1.5배. 법을 우습게 알지 않는다면 대응할 방법은 있다.

한술 더 떠서 고용규모 감축으로 대응하는 사업주도 있다. 워낙 형편이 어려운 기업이 최저임금 인상 탓에 종사자를 줄이는 거라면 함께 안타까워하겠지만, 일자리안정자금 신청도 안 하면서 덜컥 인력감축에 나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은 ‘함께 살자’는 정책이다. 정말 어려운 사업주는 정부가 돕는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인상되면서 저소득계층 지원제도의 수혜 범위를 벗어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여성은 월급이 22만원 오르게 되어 한부모가족지원금 13만원과 여기에 따라오는 몇 가지 혜택을 못 받게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실제로 돕지 못한다는 취지로 쓰여졌지만, 이 사례가 우리에게 진정 시사하는 바는 그게 아니다. 이 사례는 한부모가족지원금이 최저임금을 살짝 넘긴 수준의 임금을 받는 여성은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소득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말 많은 한부모 여성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이 제도의 수급 기준을 중위소득 52%에서 60%로 완화하기로 한 것은 타당한 대응이다.

정부는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우리 국민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마음을 모아 주시길.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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