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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라면서 거의 듣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알리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노동이나 재능이 아닌, 부(富)에 보상한다는 것이다. 꿈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 어린 소녀와 소년들에게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구축한 세계다. 지난 1년간(2016년 6월~2017년 6월) 창출된 부의 82%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의 몫이 되는 그런 세상.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하위 50%에 해당하는 37억명의 사람들은 그 어떤 부의 증가도 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제로였다.

세상은 부자들의 차지이고, 일터에서 이러한 부당함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은 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금과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많은 국가의 정부는 이러한 일이 그저 일어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 촉진시키고 있다. GDP 성장에만 몰두해 기업 세금을 삭감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를 과감히 희생시킨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운 수준의 임금을 받고 우리에게 값싼 옷을 제공하기 위해 일한다. 태국의 호화로운 호텔 방을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는 실직이 두려워 성희롱을 신고하는 것을 망설인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의 가금산업 노동자들은 화장실을 가지 못해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괴로움과 모욕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있는 기업 이사회실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주주들과 기업 사장들은 기록적인 이익을 누리고 있다. 전 세계 정치인과 경제계 인사들이 이번주 스위스 다보스에 모여 4일간 회의를 연다. 그 기간 동안 세계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약 80억달러 정도 증가할 것이다. 또한 10명의 억만장자 중 9명이 남성인 데 반해 극빈 수준의 최저임금과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번영’된 모습이다. 우리는 어린 소녀와 소년들에게 세상은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열정과 신념, 투지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러한 미래는 우리의 경제시스템을 부가 아닌 노동에 보상하도록 재설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달 파리경제대학원 세계불평등연구소(WIL)가 발표한 ‘세계불평등보고서’는 정부정책이 불평등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이미 가능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아이슬란드는 2020년까지 남녀 간 임금 격차를 근절하려는 정부 계획의 일환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임금을 적게 책정하는 기업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률 시행에 나섰다. 에콰도르는 2010년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존엄이 보장되는 최저임금(dignity wage)’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수천만명의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고, 적절한 임금과 일자리가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을 깨뜨렸다. 에콰도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실업률을 보이는 국가 중 하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의료 및 교육과 같은 공공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금 마련용으로 혁신적인 세제 정책을 도입했다. 영국법원에서 우버 운전자를 자영업자가 아니라 휴일 급여, 유급휴가 및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규직원이라고 판결했을 때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은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정치리더들의 의지이다.

우리에게는 좋은 임금을 받는 노동력과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시스템의 이점을 볼 수 있는 경제계 리더가 필요하다.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포드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핵심이었음을 인정했다.

다보스에서 필자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주주 및 고위 임원에 대한 보상 제한, 법정 생활임금 도입, 공정한 세금 체계 수립, 의료 및 교육에 대한 투자, 모두를 위한 기술혁신 추진 등을 촉구할 것이다. 경제계 리더들에게는 모든 노동자가 생활임금을 보장받고 공급업체가 공정한 가격을 지불 받을 때까지 거액의 주주 배당금과 최고 경영진에게 거액의 급여 지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다보스에서 만나는 모든 정치인과 경제계 리더들이 불평등 위기에 대한 필자의 우려에 깊이 공감하고 응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들이 행동하기를 기다리는 필자를 포함한 전 세계 수억명의 참을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위니 비아니마 | 옥스팜 인터내셔널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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